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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21세기는 문화 이미지 시대

오늘날을 문화 이미지의 시대라 한다. 그렇다고 그것이 나라의 성격을 대체하는 게 아니다. 아니, 문화적 이미지를 말할수록 나라의 성격이 강해지고 있다. 이미지의 힘은 국가적일수록 국제적인가를 어쩔 수 없이 생각하게 한다.

 

최근 우리 눈 앞에 나타난 두 이름의 임자들, 일본인 기시 도시로는 이 점을 극적으로 들고 나왔고 프랑스인 기 소르망도 그의 지론을 서울에서 되풀이 했다.

 

기시 씨(이하 경칭 생략)는 일본 NHK의 서울지국장으로 3년 임기를 마치고 귀국해야할 즈음 사직서를 내고 독립 저널리스트로 서울에서 활동키로 했다는 칼럼 ‘내가 한국을 택한 이유’(J일보 8월 5일)을 발표해 현해탄 양쪽에 조용한 파문을 일으켰다.

 

조직에서 독립으로의 변신은 흔히 일어날 수 있다. 한데 문화 이미지 측면에서 기시의 글은 주목할 점을 담고 있다. 먼저 그의 고국 일본에 대해, 오늘의 “일본인이 목표를 상실해 버리고 부유(浮遊)하고 있다.” 일본의 쇠퇴는 80년대 초 ‘Japan As No.1’이라고 칭송될 때 부터 시작됐다. 그러나 부는 결코 일본인을 행복하게 만들지 않았다. 그들의 부는 국가, 기업, 개인적으로 자기 이외에 타인을 위해 공헌한다는 ‘비전과 모럴’이 결여돼 있다는 것이다.

 

한국에 대해, 기시는 한국인의 장점으로 (1)남북통일이라는 국가 목표 (2)애국심 (3)공동체의식과 이타주의, (4)정치의 지도력 (5)기업의 기민한 의사결정 (6)디자인의 힘 (7)개인주의 (8)낙관적 민족성을 들었다.

 

기시는 “한국다움이라는 것에 대한 매력, 그것은 사람들이 몸소 역사의 주체가 돼 살아가고 있는 사회의 매력이다”고 밝혔다.

 

NHK라면 일본의 문화 이미지를 세계로 투사하는 일을 주 임무로 하는 일본의 국가차원의 조직으로 지국장은 그 체계의 요체가 아닌가. 그러면서도 ‘아니다’라 말하고 있으니 놀랍기만 하다.

 

한편, 최근 프랑스 ‘문명비평가’ 소르망은 서울에서 ‘기업과 문화예술, 어떻게 협력할 것인가’라는 강연을 했다. 요점은, 선진 나라들은 강력한 문화적 이미지를 갖고 있다 한다. 독일은 ‘고품질과 기술’, 프랑스는 ‘패션과 삶의 질’, 일본은 ‘정밀과 섬세한 아름다움’, 이탈리아는 ‘우아한 세련미’ 등. 그러나 한국은 문화적 시각에서 봤을 때 부가가치를 가지고 있지 않다. 듣기 좋은 형용사를 쓸 것이 없다는 셈.

 

소르망의 말은 이어진다 - 일본은 1930년대 조잡한 싸구려 상품의 이미지를 바꾸는데 성공했다. 일본 문화는 예술을 통해 60년대 서구에 소개됐는데 이것이 일본의 평판을 높이고 서구 소비자들에게 일본제품을 수출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그에 따르면, 한국문화는 매우 유서 깊고 독창적임에도 불구하고 세계에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이것은 과거의 문화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문화는 묘지가 아니다.” 또, 한국 현대예술의 창조력은 음악 미술 조각 비디오 영상 영화 문학 등에서 입증되고 있다. 그러나 한국문화를 해외에 선양하기 위한 노력은 아직도 부족하다.

 

소르망은 일본사회와 문화에 대해 옛날 얘기를 많이 늘어놓고 있다. 그는 기시가 개탄하는 일본 사회 문화 가치관의 오늘의 병폐를 잘 알지 못하는 듯 하다. 그는 평양에도 갔었고 서울에는 자주 드나들면서 서구사회에 한국 물품을 팔려면 ‘개성과 세련미’를 갖춰야 한다고 설교를 한다.

 

하긴 그의 말에 일고의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자기가 장기로 하는 논제에 대해서는 문화의 장단을 철저히 파악하고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문화의 장인(匠人)정신이라 할까. 왜냐하면 그의 입에서는 지난날의 일본 문화 예찬만 나오지, 오늘의 일본 병폐는 모르고 있지 않는가. 아니면, 침묵인가.

 

나는 이 문화 이미지 비평가한테서 듣고 싶은 것이 있다. 단적으로 한·불 사이에 현안인 저 ‘외규장각문서 반환 건’에 대해 고견을 듣고 싶은 것이다.

 

어떻게 프랑스에서는 대통령부터 나서서 이 문제에 대해 그렇게 할 수 있는가. 그런 것이 프랑스 문화 이미지의 발로인지 몰라도 우린 이해가 안 간다. 일보를 양보하여, 파리는 예술의 중심지로 널리 인정되니 기한을 두고 이 조선고문서를 전시하는 데는 한국인이 이의를 갖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소르망은 어떻게 지금 우리 고문서가 프랑스의 수중에 있는지 알고나 있는가. 도시 그것은 프랑스의 문화 이미지에 걸맞는 방식으로 파리에 간 것인가. 아니면, 지나간 제국주의 시대 일이니 불문에 붙이자는 건가.

 

주제 외라 할지 모르나 문화 이미지를 얘기하자면 발생적 사단을 덮어 두고 지엽말단이나 외교교섭으로 풀자는 것은 프랑스적 지성에 걸맞는다고 보이지는 않는데. 화두인 ‘문화 이미지’를 들고 나온 분에게, 이 숙제를 돌려 드리는 고충이다.

 

/김용구(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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