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무리의 사냥꾼들이 사슴을 잡기 위해 사냥을 시작한다. 사슴이 있을 법한 산을 둘러싸고 사슴을 몰아 조금씩 올라가면서 정상에서 잡기로 약속한다. 사슴을 잡으면 모든 사냥꾼들이 고기를 골고루 나누어 먹을 수 있다. 그런데, 사슴사냥이 무르익을 즈음 한 사냥꾼의 옆으로 토끼가 지나간다. 순간, 사냥꾼은 망설인다. 그 사냥꾼은 토끼를 잡아 배불리 먹을 수도 있지만, 그가 토끼를 잡으려는 사이에 사슴은 그의 자리가 빈 틈을 이용해 달아날 수도 있다. 사냥꾼은 생각한다. 다른 사냥꾼도 토끼를 보면 사슴사냥의 대열에서 이탈할 것이라는 의심을 버리지 못한다. 결국 그 사냥꾼은 자신의 옆으로 지나가는 토끼를 잡기 위해 정상에서 사슴을 잡자는 약속을 배반하게 되고, 사슴사냥은 실패로 끝날 수밖에 없다.
루소는 '사슴사냥 우화'를 통해, 국제사회의 무정부적인 특성 때문에 결국 국제사회에서 협력이란 본질적으로 불가능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모든 사냥꾼들이 사슴만을 잡도록 통제할 수 있는 중앙 권위체가 존재하지 않는 국제사회에서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사슴사냥, 즉 국제협력은 도무지 어렵다는 것이다.
국제사회와 달리 개별 국가는 '강제력'을 가진 중앙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루소의 사슴사냥 우화가 적용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다양화·분권화가 점점 심화되고 있는 오늘날 한 국가의 중앙권력이 완벽한 통제를 한다는 것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비록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해도 그것을 위해 국가를 구성하고 있는 집단, 그리고 개별 구성원을 강제한다는 것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공공의 이익을 위해 자신이 속한 집단 혹은 계층의 희생이 요구된다고 느껴질 때는 더욱 그렇다.
따라서, 현대 사회에서 정부의 역할은 사냥꾼들에게 사슴을 잡도록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협력을 이끌어 내는 것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모든 사냥꾼들이 사슴을 잡는데 협력할 것이라는 믿음, 그리고 사슴고기가 모든 사냥꾼에게 골고루 나누어질 것이라는 확신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 최소한의 조건이다.
모든 사람들의 관심이 경제에 쏠려있다. 다가오는 2001년, 우리가 잡아야 할 사슴은 자연스럽게 '경제 살리기'에 맞추어지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순조로와 보이지 않는 것이 또한 현실이다. 경제 회생에 대한 여전한 불안감, 연일 신문에 오르내리는 부정부패 사건들, 빈부격차의 심화에서 느껴야 하는 상대적 박탈감, 불안과 불신이 좀처럼 가셔지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모든 국민이 경제를 살리기 위한 대열에 동참하고 있다는 믿음도, 국민 모두의 이익을 위해 공평하게 감수해야할 어려움이라는 인식도 많이 부족한 것이 지금의 상황이다.
'경제 살리기'가 그 무엇보다 중요한 당면과제라고 하더라도, 그리고 그것이 국민 전체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이를 강요할 수는 없는 일이다. 특히, 어느 한 집단의 혹은 특정 개인의 희생을 요구하는 일이라면 더더욱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 공통의 이익이라는 믿음이다. 사회 구성원 모두가 공통의 이익을 위해 개인의 이득을 지나치게 내세우지 않도록 자발적인 협력을 이끌어 내는 일이다. '토끼를 잡기 위한 배반'보다 '사슴을 잡기 위한 협력'을 선택하도록 설득하는 것이 중요하다.
새천년의 설레임으로 시작했던 한해가 어느새 저물어 가고 있다. 다가오는 새해에는 정부와 국민 모두가 '사슴사냥'의 지혜를 모아 경제회생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도록 슬기롭게 대처해 가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국회의원 정세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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