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아침 나는 인후동 성당에 갔다. 안 가브리엘 신부님께서 좋은 축복의 말씀을 주셨다. "새해에는 우리 모두 깨끗한 화선지 한 장을 받은 것과 같다. 지난 해 그림을 망친 사람에게 새로운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면, 얼마나 절망스럽겠는가? 새해를 맞아 새롭게 받아든 하얀 화선지 위에 꿈과 희망으로 가득찬 새로운 그림을 시작해야 한다." 꿈을 다른 말로 바꾸면 비전이다.
1960년 케네디는 냉전에 지친 미국 국민들을 향해 새로운 비전 -우주를 향한 뉴프론티어-를 제창했다. 우주공간을 목표로 한 미국인들의 도전은 기초과학과 응용기술에 대한 집중적인 투자를 낳았고, 1969년 인간을 달에 착륙케 했다. 그 후 미국은 우주항공 분야에서 확실하게 세계 최고 최강 불패의 경쟁력을 누리고 있다.
2001년 신사년(辛巳年) 우리의 비전은 두 가지 방향에 있다. 하나는 주식값이 꾸준히 오르는 나라를 향한 비전이다. 새해 벽두 주식값이 연 사흘째 올라 모처럼 웃음을 되찾았다. 이것이 한 순간의 반짝 상승으로 그치지 않고 지속적인 상승으로 이어지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첫째는 투명화 작업이다. 오늘 한국의 증권거래소와 코스닥 시장을 통틀어 주식의 시가총액은 250조원, 약 2,000억 달러이다. 반면, 일본의 일개 통신회사인 NTT의 시가총액은 650조원, 5,000억 달러를 상회한다. 아무리 대한민국 경제가 어렵다고 하지만, 일본의 일개 통신회사 주식의 40%에 불과하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고, 부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핵심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돈을 가진 외국 투자자들이 한국과 한국기업을 믿지 못하겠다고 말하는 데 있다. 그들을 믿게 하는 것- 그것이 투명화 작업이고, 다른 말로 바꾸면 구조조정 작업이다. 구조조정은 고통을 수반한다. 그러나, 그 고통을 뚫고 나가야만 우리 앞에 다시 꿈과 희망을 세울 수 있다.
둘째는 디지털 경제강국의 건설이다. 지난 연말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誌는 "Korea gets wired"(거미줄처럼 네트워킹되고 있는 한국)이라는 제목과 함께 한국의 인터넷 열풍을 표지 특집기사로 다뤘다. 불과 3년만에 일본을 따라잡고 미국을 제외한 여타 산업국가 가운데 정보화의 인프라(하부구조)와 인터넷 부문에서 선두그룹으로 떠오른 한국을 주목하라는 이 기사는 우리에게 희망을 주기에 충분했다. 이제 시작이지만, 디지털과 인터넷에 우리의 사활이 달려있다. 정치와 관료가 정보화의 물길을 앞장서 선도해 내기만 하면, 인터넷의 물결은 우리를 정보화 강국의 자리로 인도해줄 것이다.
불과 7-8년만에 세계 최고의 정보화 경쟁력을 건설한 핀란드를 벤치마킹해야 한다. 1990년대초 핀란드는 한국과 비슷했다. 그러나 한국의 낡은 정치 리더십과 관료들이 고철덩어리로 변한 한보철강에 5조원을 쏟아 붓고 물류해소에 아무 구실도 못할 경부고속철도에 20조원을 투하하고 있을 때 핀란드는 국가 투명화와 정보화 작업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 결과는 세계 최고의 나라와 IMF 구제금융 국가라는 극명한 대비로 나타났다. 같은 이치로 전라북도도 "산업화에서는 뒤졌지만 정보화에서는 앞서가야" 한다. 공해없는 고부가가치 산업인 ‘디지털산업’과 ‘관광산업’에서 앞서가는 데 21세기 전라북도의 꿈과 비전이 있다.
또 하나의 비전은 북방 프론티어이다. 평화의 깃발로 북방을 뚫고 가야 희망이 열린다. 역사의 대문이 열렸을 때 망설이지 말고 확실하게 뛰어 들어가야 한다. 냉전의식의 감옥에서 탈출해 탈냉전의 세계사에 합류해야만 한다. 평화가 긴장보다 싸다. 2001년 국가예산 100조, 국방예산 15조(15%). 70년대와 80년대 거의 30%를 차지했던 국방비의 비중이 많이 줄었다. 그리고 줄어든 만큼의 예산을 정보통신 등 다른 부문에 분산시켜 국가발전을 도모하고 있다.
이제야말로, 코페르니쿠스적 사고의 일대 전환이 필요하다. 독일 통일의 과정에서 서독이 동독에게 그랬던 것처럼, 우리 역시 북한에 시장을 만들어 줘야 한다. 중국과 베트남은 공산당이 집권하고 있지만 과거의 중국이나 베트남이 아니다. 시장이 있기 때문이다. 북한에 돈이 들어가야 시장이 생기고 북한이 뒤로 돌아가지 않게 된다. 속도조절론은 착각이다. 오히려 때를 놓치지 않고 변화를 끈질기게 추구해야 한다. 특히 남북간 체제 대결은 이미 끝났다. 더 이상 남북의 격차를 벌이는 일은 오히려 위험을 초래할 가능성을 높일 뿐이다. 남북의 격차를 줄여가야 한다. 이것이 현실적인 평화를 보장한다. ‘북방 비전’의 실현없이 7,000만 민족의 내일은 열리지 않는다.
주식값이 꾸준히 오르는 나라를 만드는 것, 디지털 정보강국을 실현하는 것, 그리고 냉전을 허물고 북방으로 가는 것 이것이 오늘 우리의 꿈이자 비전이다.
/정동영의원 (민주당 최고위원, 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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