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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인정이 메마른 공직사회

 

 

 

옛날 당시의 풍습대로 칠십이 된 노인 아버지를 아들이 지게에 지고 가서 산중에 버리고 돌아오려 할 때 함께 갔던 노인의 손자가 그 지게를 다시 가져가려 하자 아버지가 의아스러워서 그 까닭을 물은즉 “이 다음에 아버지가 늙게 되면 이 지게에 실어 내다 버리겠다”는 대답이었다.

 

 

 

이 말을 들은 아비는 깊이 깨달은 바가 있어 다시 노부(老父)를 지고 집에 돌아와 지성으로 공양하였으며, 그후로 노인을 버리는 풍습이 없어졌다는 ‘기로전설(棄老傳說)’의 민간설화가 있다.

 

 

 

얼마전 도청 고위 공무원들의 명예퇴직 사령 교부 식에 후배들의 참여가 별로 없는 싸늘한 분위기를 보고 공직사회가 어쩌다 이렇게 까지 됐느냐고들 떨떠름한 표정이었다는 기사를 본적이 있다.

 

 

 

필자는 이를 보는 순간 서글픈 생각에 잠기면서 2년전 도내 K시 면사무소에서 30여년간 줄곧 근무하다가 구조조정이란 명분 하에 자의반 타의반으로 자리를 물러난 공무원의 한 맺힌 사연을 하소연했던 기사내용이 떠올랐다.

 

 

 

내용인즉 함께 근무하던 하위직 동료가 퇴근하는 길에 이륜차에 싣고온 봉투 속에서 꺼내주는 포장증을 받아 보는 순간 국가에 대한 감사는커녕 직장에 대한 증오감이 치밀었고 내가 이런 대우를 받아야 만하는 신세자탄에 눈물을 흘렸다는 요지였다.

 

 

 

‘명예퇴직’이란 공직자가 법적으로 보장된 정년 이전에 후배들을 위해 먼저 자리를 양보하는 행위로 공무원으로서 가장 명예롭고도 추앙 받아야 마땅한 일이다.

 

 

 

그러나 그 실제는 너무나 엉뚱하게 밀어내는 후배에 쫓겨나는 선배인양 상호 서먹서먹한 야릇한 관계를 형성하여 축하도 위로도 하기 거북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는 것이다.

 

 

 

과거 정년 퇴직시에는 선후배가 한자리에 모여 기관장이 주재하는 송별식에서 후배들에게 마지막의 한마디를 남기고 석별의 주악에 눈시울을 붉히며 탁주일배를 권하는 기회가 주어졌었다.

 

 

 

한 지붕 안에서 동고동락한 선후배간의 끈끈한 정이 오고가는 아름다운 모습은 어디론지 멀리 사라지고 다람쥐 도토리 모으기 식으로 사령장 수여도 없이 인사발령의 공문에 스스로 집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신세로 전락시켜 동료들과 이웃사람들에게 죄인 취급을 받도록 조치되었던 과거의 엄연한 사실에 대하여 구차한 이유나 무슨 변명도 이제와서 아무런 필요가 없다.

 

 

 

단도직입으로 이야기해서 오늘만을 알고 내일을 모르는 지각없는 철부지의 처사가 분명했다.

 

 

 

모든 인간 관계는 처음 시작보다 마직막 끝이 중요한 것이다. 시작에서 잘못된 점은 시정할 기회가 있지만 헤어지는 사람에게는 그럴 시간이 주어지지 않기 때문에 모든 것이 한(恨)으로만 엉키기 마련이다.

 

 

 

헤어지면서 다시 만날 시간을 약속하는 우리의 정서에서 “오는 님은 입쌍이요 가는 님은 밉쌍이라”는 말은 떠나는 자를 미워서 냉대하는 말이 결코 아니다.

 

 

 

후배는 선배의 행동을 닮아 그대로 행하기 마련이며 대접도 푸대접도 뿌린 대로 거두어들이는 세상사 자업자득(自業自得)이기 마련이다. 바라건대 메말라지는 냉혹한 공직사회를 거듭나기 위해 선후배 가릴것 없이 그 누구도 끈끈한 인정을 가질 대가 아닐까?

 

 

 

하나의 씨앗은 그를 감사고 있는 껍질이 있기에 존재하는 것이다.

 

 

 

/ 박준하(향토문화 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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