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재 편집국장
지난해 대통령선거를 계기로 지방분권은 이제 하나의 커다란 전국적 의제(agenda)로 부상해 있다. 지방분권은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가 동북아 경제중심국가 전략과 함께 2대 국정과제로 삼고 있는 핵심사업이다.
대통령직 인수위는 특히 ‘지방분권특별법’과 ‘지역균형발전특별법’을 빠른 시일내에 제정함으로써 지방분권을 국가적 개혁과제로 추진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겠다는 방침이어서 지방 입장에서는 상당히 고무돼 있다.
바야흐로 지방분권의 제도적 장치에 대한 첫 단추가 꿰지는 셈인데 이같은 지방분권의 과제들을 실천하기 위한 틀이 갖춰진다면 2003년은 분명 ‘지방분권 원년’으로 기록될 것 같다.
제도적 장치 만능 아니다
그러나 이같은 제도적 장치가 마련됐다고 해서 지방분권이 저절로 이뤄질 것으로는 보지 않는다. 대통령 직속의 각종 기구와 지방이양위원회 같은 제도가 있었지만 유명무실하거나 영양가 없는 권한만 지방에 넘겨져 오히려 일거리만 쌓이는 결과를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도적 틀 못지않게 중앙 위주의 사고에 경사돼 있는 의식의 때를 벗겨내지 않는 한 실질적인 지방분권은 요원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요컨대 분권은 하드웨어 못지 않게 소프트웨어 부문이 중요한데 그 핵심은 탈(脫) ‘중앙 위주의 사고’에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를테면 서울은 ‘표준’이고 ‘상류’이며 선망의 대상이라는 의식이 눈꼽만치라도 우리의 뇌에 자리잡고 있다면, 중앙정부에 잘 보여야 인사교류도 원만히 이뤄지고 예산도 한푼이라도 더 배정받는다는 의식이 우리의 머리속에 또아리를 틀고 있는 한 분권은 어렵다.
이걸 실리(實利)라는 이름으로 당위성을 포장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눈가림의식을 씻어내지 않는다면 종속적 삶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예산배정이나 인사교류는 구걸이 아니라 당연한 것이라는 생각이 뿌리박혀 있어야 하고 중앙정부가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렇지 않게 돌아가는 행태를 꼬집고 비판해야 한다.
어느 장관이 전남에 이어 전북을 방문하러 오는데 도지사가 도 경계까지 마중나가는 일도 있었다. 그것도 민선시대였다. 이런 구습은 더이상 구경하지 않으면 좋겠다. 예산확보 때문이라는 게 이유였지만 국가예산이 어디 장관 호주머니 돈인가, 영접 태도에 따라 주고 안주고 하게?
지방의 주민이나 행정 등 각 분야가 “의식이 바로 서야 분권도 바로 세울 수 있다”는 명제를 체득화하는 것이 지방분권의 제도적 틀 못지 않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왜곡된 의식을 바로 잡고 경우에 따라서는 의식화된 사고를 통해 균형감각을 갖추어야 한다.
탈 ‘중앙위주의 사고’ 관건
예컨대 어린 소녀가 창녀로 전락하는 걸 두고 소녀의 사사로운 개인적 탈선으로만 볼 게 아니라 오히려 시대와 상황의 결과로 보는 식의 구조주의적 사고가 지방을 보는 시각에도 필요하다.
누구나 지방은 현재 영양실조에 걸려있다고 말하지만 애시당초 토양이 척박하고 머리와 돈이 없어 빈곤의 상황에 처해 있는 게 아니다.
중앙정부의 오만과 그릇된 위정자, 기득권 세력의 이기주의적 행태의 결과라는 걸 깨닫고 이런 구조주의 사고로 무장해야만 분권의 문제도 구걸이 아닌 보다 떳떳한 권리로 인식되는 것이다.
이럴때 결국 중앙정부의 보조금이나 교부세를 당당히 받을 수 있게 되고 90년대 초 일본 이즈모 시장을 지낸 이와쿠니 데쓴도 처럼 지방도 중앙에 NO라고 말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탈 ‘중앙위주의 사고’는 지방분권을 하기 위한 또하나의 중요한 조건인 셈이다.
/이경재(본사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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