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오전 향년 81세로 세상을 떠난 송준호(宋俊浩) 전북대 명예교수(사학과)는 평생을 고문서와 함께 살아온 학자중의 학자다.
작고하기 며칠전 폐렴 합병증으로 고통을 호소하면서도 병문안을 온 제자들에게 집필중인 논문을 마쳐야 한다며 글쓰기에 편한 차트판을 구입해 달라고 부탁했을 정도로 대단했던 학문적 열정. 최근 병원에 입원하기 직전까지 놓지 않았던 그 미완의 논문은 고인의 영정앞에 올려졌다.
송교수의 제자로 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달려와 빈소를 지킨 전경목 정신문화연구원 한국학 대학원 교수는 "배우가 무대에서 죽기를 원하는 것처럼 교수님도 글을 쓰다가 생을 마치고 싶어하셨다”고 회고했다.
송교수는 심혈을 기울여 온 논문을 탈고한 다음날 세상을 떠난 미국 동양사학자 페어뱅크 교수의 사례를 종종 들추며 학자의 자세를 강조했다고 전교수는 전했다.
중국 및 한국의 과거제도와 한국의 보학(譜學)을 주로 연구해 온 송교수의 학문적 업적중 가장 눈길을 모으는 분야는 역시 에드워드 와그너 전 미국 하버드대 교수와 함께 30여년을 투자, 지난 2001년 결실을 맺은 '보주 조선문과방목(補註 朝鮮文科榜目)'이다.
한국학 데이터베이스업체인 동방미디어에서 CD롬으로 나온 이 성과물은 조선 5백년 우리 사회를 지배했던 10만여명의 신상명세서를 담은 것. 송교수는 동방미디어에서 '한국관직사전'CD롬을 발간하기도 했다.
송교수는 퇴임후에도 전주시 서노송동에 따로 연구실을 마련, 서재겸 숙소로 사용하면서 연구에 몰두해왔다. 팔순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항상 의자에 앉은 채로 3∼4시간씩만 잠을 잤으며 매일 아침 경서를 소리높여 읽는 일로 하루일과를 시작했던 송교수의 학문적 자세는 모든 제자들에게 신화와도 같은 가르침이었다.
완주군 조촌면이 고향인 고인은 전주사범학교와 동국대 사학과를 졸업, 1954년부터 1987년 정년퇴임때까지 전북대에 재직하면서 문리과대학장과 박물관장·전라문화연구소장등을 역임했다.
정년퇴임후에는 곧바로 원광대 교수로 임용돼 1996년까지 재직했으며 국민훈장 모란장과 동백장을 수상하기도 했다.
가장 최근까지 곁에서 송교수를 모셨던 전경목 교수와 최병운 전북대 학생처장, 이규하·이희환 교수(전북대), 그리고 서강대에 재직하다 독일 대학으로 간 백승종 교수 등이 고인의 제자다.
전순길 여사(全順吉·76)와의 사이에 3남 3녀를 두었으며, 코오롱그룹 구조조정본부 송문수(宋文秀·54) 전무이사가 장남. 둘째 주하씨(柱河·47)는 국회 김원기의원 보좌관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셋째 만오씨(萬午·44)는 전주대 강단에 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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