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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창] 판소리, 전라도의 위대한 힘

조상진 정치부장

 

벌써 20년 가까이 되었다. 언론연수를 위해 경기도의 남한강수련원에서 2주일을 보낸 적이 있다. 전국에서 신문과 방송기자 40여명이 모였다. 그때 강좌중 기억에 선명한 것은 박동진 명창의 판소리 흥보가였다.

 

'우리 것은 소중한 것이여-'로 유명한 박 명창은 토막소리 위주이던 판소리계에 완창 판소리의 새바람을 일으킨 국악계의 거목이다. 당시 박 명창은 머리에 갓을 쓰고 옥빛 두루마기를 입고 무대에 올랐다. 고수는 그와 고락을 같이했던 주봉신씨였다. 박 명창은 소리에 앞서 목을 푸는 단가(短歌)에 대해 설명한 후 "듣고 싶은 판소리가 있으면 말해보라”고 하였다. 서로가 얼굴만 쳐다보길래, 내가 나서 "적벽가중 군사설움타령 대목을 들려주시면 어떠냐"고 청했다.

 

그러자 박 명창은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다. 내가 "전주에서 왔다"고 했더니 대뜸 "그러면 그렇지!"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나는 충청도 출신이지만 판소리는 전라도 말로 해야 제 맛이 난다"며 '그런데-'와 '그런디-'의 차이를 예로 들었다. 그 뒤 또 한차례 그 분의 소리를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예의 '전라도 소리 예찬론'을 폈다.

 

그렇다. 그 분의 말씀이 아니라도 판소리에는 전라도 사람들의 혼과 기질, 풍토가 녹아있다. 핏속에 판소리 가락이 숨쉬고 있는 것이다.

 

특히 전북은 판소리의 탯자리라 할수 있다. 판소리의 중흥기에 이름을 날렸던 전후기 8명창 16명 가운데 12명이 전북출신이고 근대 5명창중 3명이 그러하다. 지금도 수많은 전북출신들이 판소리대회를 휩쓸고 있다.

 

요즘 판소리가 새롭게 각광을 받으면서 국악인들이 들떠 있는듯 하다. 지난 7일 유네스코가 판소리를 '인류 구전및 무형유산 걸작'으로 선정한후 더욱 그런 느낌이다.

 

2001년 처음으로 한국의 종묘제례(악)이 들어갔고 이번에 판소리가 선정된 것이다.

 

아다시피 판소리는 한 사람의 창자(唱者)가 고수의 북장단에 맞춰 노래와 말(아니리), 몸짓(너름새 또는 발림)으로 3-5시간씩 끌며 관객을 울리고 웃기곤 한다. 질펀한 사랑얘기에서부터 수십만 대군의 전쟁스펙터클까지 소리꾼 혼자 펼쳐내는 1인 그랜드 오페라인 셈이다.

 

이러한 판소리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되었다는 것은 자랑스러운 일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판소리를 '소멸위기에 처한 예술'로 판단했다는 점을 새겨봐야 한다. 자생력이 없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멸종위기에 직면한 동물들을 보호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실제로 판소리 공연은 서울과 호남, 영남 일부에 그치고 있는게 현실이다. 최근 영국의 에딘버러 축제나 프랑스 미국 등에 초청되었다고 호들갑을 떨고 있지만 실제로는 그들 축제의 '양념'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간간이 창극이나 창작판소리가 무대에 올려지고 있으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물론 일제시대 이후 소멸의 길을 걸을 때에 비하면 훨씬 윤택해진 것도 사실이다. 전주의 '또랑깡대 콘테스트'라든지 서울 종로나 인사동의 '거리소리판' 등도 판소리의 대중화를 위한 다양한 실험으로 눈길을 끌만하다.

 

이제 판소리의 종가(宗家)로서 전북의 할 일이 더욱 많아졌다. 기왕에 하던 세계소리축제나 대사습놀이 등의 내실을 기해야 함은 물론 새로운 모색이 끊임없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두가지만 제안하겠다.

 

하나는 전북에 오면 음식점이고 상점이고 어디를 가나 판소리를 쉽게 들을 수 있게해야 한다. 주인이나 점원 등을 초청해 판소리 감상기회를 갖도록 해 이해를 높이고 테이프나 CD 등을 무료로 보급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쉽지 않을지 몰라도 가랑비에 옷 젖듯 자연스럽게 스며들도록 유도해야 한다. 일본은 우동집에서도 고토 소리가 흘러나올 정도로 전통음악이 일상생활에 뿌리내렸다.

 

또 하나는 초등학생의 국악교육이다. 전북만이라도 음악교육의 50%를 국악으로 짜면 어떨까 한다. 그리고 그를 가르칠 사람을 도차원에서 지원해 주는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국악이 몸에 배도록 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리고 외국인들을 위한 팜플렛을 다양하게 만들 필요가 있다. 영국의 '가디언'지는 판소리를 인내력 시험(Endurance Test)이라고 표현했다. 대부분의 청중이 1시간도 못돼 나가버려, 이를 빗댄 것이다. 판소리의 세계화가 곧 전라도 힘의 세계화일수 있기에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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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진 chosj@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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