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깐느 영화제에서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가 심사위원 대상을 받았다. 앞서 베를린 영화제에서는 김기덕 감독의 『사마리아』가 감독상을 받았다. 작년 베네치아 영화제에서 이창동 감독이 수상한 것을 포함하면 세계 3대 영화제에서 잇달아 인정을 받은 셈이다. 그러자 한국영화가 상업성과 작품성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다 움켜쥐고 있다는 평가도 나왔다.
자화자찬이 지나치다고 미간을 좁히지 마시라. 외부의 기준으로 확인하지 않으면 아직도 성취도 측정이 불안한 소심증이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오늘의 한국영화에 대한 자신감과 함께 수준에 대한 욕구까지 표출하고 있다는 점이 미소를 머금게 한다. 유명 영화제의 소식을 접하면서 매년 영화제를 주최하는 도시의 시민으로서 부러운 마음도 컸다. 50여년 연륜의 차이가 금세 좁혀질 리야 없지만 그럴 날이 멀지 않을 것이라고 기대해 본다.
전주영화제가 '대안'을 주제로 삼은 데에는 캠코더의 보급이 한 몫을 했다고 한다.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전문가의 장비로 취급받았던 물건들이 보통 사람들의 손에 쥐어진 것이다. 여기에 개인용 컴퓨터의 보급과 무어의 법칙이 보여준 성능의 향상은 동호인 영화의 수준을 몇 단계 높였다. 물론 편집 장비의 대부분은 여전히 개인의 호주머니에서 꺼낼 수 있을 만큼 만만하지 않지만 이런 문제도 공동구입이나 지자체의 지원으로 어느 정도 해결되는 모양이다.
영화판의 속사정을 전혀 모르면서 제작과정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영화의 편집이라는 과정이 새삼스럽게 관객의 한 사람인 나에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천만 관객 시대에도 많은 사람들이 비디오 대여를 통해 놓친 영화나 보고 싶은 영화를 다시 즐긴다. 최근에는 편리함과 높은 화질을 함께 제공하는 디브이디라는 매체가 등장하였다. 디브이디는 영화 제작진이 작품에서 의도한 것이 무엇이었는가를 보여줄 뿐 아니라 편집의 과정에서 가위질 당한 부분까지 보여준다. 영화가 편집의 산물이라는 것을 공공연히 드러낸다.
편집에 의해 영화의 내용이 달라진다고 한다. 그렇다면 촬영의 일차 결과물인 필름은 사실의 재현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원료일 따름이다. 애초부터 배우의 연기는 현실의 재생 또는 모방이다. 연기의 배경으로 종종 설치하는 세트는 사실을 대체하는 속임수이다. 비용의 문제로 모형을 만들기도 했지만 요즈음은 컴퓨터 그래픽이 이를 대체하는 추세이다. 상상을 가시적 결과물로 만드는 일이 그만큼 수월해졌다. 아무튼 대부분의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허구이다. 영화라는 동영상이 재미있고, 우습고, 슬프고, 무섭고, 끔직한 거짓말이라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어떤 사진작가들은 이와 같이 영화에 대해 관대한 대중의 취향이 못마땅할 지도 모른다. 동영상과 정지화상이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이런 차이가 나오는 것은 아닌 듯하다. 그들은 촬영의 결과물에 손질을 하는 것을 사진 예술에 대한 모독이라고 생각한다. 사실에 대한 집착이 사진작가들에게서 훨씬 더 강렬하게 느껴진다. 그런 점에서 그들은 기록영화 제작자와 같은 부류이다. 그렇지만 손대지 않는 사진가들도 순간포착, 심도와 조명 조절 등에 의해 잘 나온 사진과 그렇지 못한 것을 구분한다.
사실은 무엇인가?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 왜 그렇게 보여주려고 하는가? 영화와 사진은 전통적인 회화가 고민했던 문제를 물려받고 있다. 렌즈의 각도는 렌즈 뒤에서 초점을 맞추는 시선의 연장선상에 있다. 영화의 제목과 더불어 감독의 이름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철성(문학평론가)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