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기사 다음기사
UPDATE 2025-11-07 07:44 (Fri)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오피니언 chevron_right 문화마주보기
일반기사

[문화마주보기] 곽병창 형에게

지난 봄에 성산포에 갔었어, 형. 초행이었지. 성산포는 있는 그대로, 조금 과장하면 하나의 장엄한 ‘문화’라는 생각이 들더라구, 신이 빚어낸. 관광객 하나가 나한테 담뱃불을 빌려가면서 묻더만. 어디서 왔냐고. 자기는 서울에서 왔다면서. 전주라고 그랬더니 담배 한 모금 기분좋게 뿜어대고는 또 한마디 덧붙이는 거야. 아, 전주비빔밥. 거, 콩나물 해장국 맛도 그만입디다. 그 사람이 좀 만만해 보였으면 한 마디 하고 싶었어. 내 기분은 하나도 그만 아닌디요?

 

사실 말이지, 시내 어느 술자리든 젓가락 숟가락 장단에 판소리 단가 한 대목씩 불쑥불쑥, 구성지게스리 불러제껴서 좌중의 흥을 돋울 줄 아는 사람들, 어느 도시 가서 만날 수 있겠어? 해장국 맛 그만이더라던 그 사람, 아마 콩나물국밥집 어딜 가든 멋들어지게 쓰고 그린 시서화(詩書畵) 몇 점씩은 벽에 다 걸려 있다는 걸, 고속도로 톨게이트 천장에 기왓장 얹고 그 자체가 예술작품인 현판 새겨서 도시를 알리는 데가 전주 말고는 없다는 걸 몰랐던 모양이야. 그게 안 보였겠지.

 

그런데 그 사람만 탓할 일은 아니더라고. 가만 생각해 보니까 책임은 우리 모두한테 있을 수도 있겠다 싶어. 일상처럼 자동화돼서 그런지, 아니면 살기 바빠서 그런지 대부분의 우리 지역 사람들, 그런 데 별로 관심 없는 게 사실이잖아. 오죽하면 전통문화중심도시를 추진한다면서 예쁘장하게 생긴 것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별로 없을 것 같은 댄스 가수들까지 초청해다가 홍보대사로 위촉했겠어.

 

형. 얼마 전에 우리 한벽루 근처 수퍼마켓에서 ‘가맥’ 마셨던 거 생각나? 그날 형은 서울 출장 다녀오는 길이라고 했어, 마누라한테 알릴 시간도 없이. 언론사 문화부 기자들 만나고 오는 길이라고 그랬어. 형의 차 뒷자리에는 소리축제 홍보물이 가득 실려 있대. 아마 모르는 사람이 들여다봤으면, 영락없이 인쇄소 직원 차인 줄 알았을 걸? 하긴 아무려면 어떻겠어.

 

한동안 형은 연극에다 밥 말아 먹고 사는 사람 같았어, 내가 보기에는. 자나깨나 그저 연극이었지. 다들 알고 있는 것처럼 그에 걸맞는 성과도 거두었고. 그러다가 어느날 보니까 소리판 만드는 데 가 있대? 하긴 둘 다 무대예술이니 기획하고 연출하는 건 한 줄기라 딱이겠구나 싶더라고. 더 딱인 이유를 말해줄까? 형은 이름까지도 병창(竝唱)이잖아. 가야금, 거문고 무릎에 눕혀놓고 뜯기만 하면 산조, 노래도 함께 부르면 그게 바로 형 이름 병창 아니우.

 

이번 전주세계소리축제는 9월 27일에 개막한다고 들었어. 전주시 전통문화중심도시 추진사업하고도 맞물려서 어느 때보다 그 중요성이 더할 것으로 생각돼. 개막일이 다가올수록 형은 밤잠을 설치고 있는 줄 알지만 나는 왠지, 우리 동네 말로 ‘겁도 안 나게’ 성공적인 대회가 될 것으로 확신해. 왜냐하면 형이 하는 일이고, 그 동안 머리칼 헤성헤성해지도록 혼신의 노력을 다해 왔잖아.

 

지난 여름에 우리 학과에서 고등학생들하고 문학캠프라는 걸 했었어. 캠프장으로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 전주역 앞을 지나는데 경남 진주에서 온 고3 여학생 하나가 역사(驛舍) 기와지붕을 가리키면서 그러대. “전주는 확실히 뭐가 달라도 다르다 아니가.” 문학소녀의 눈에는 그게 보였나 봐. 바로 그거잖아. 그게 우리 색깔이잖아. 그걸 형이 만들어가고 있는 거야, 지금.

 

곧 죽어도 맛과 멋의 고장이라고, 우리 스스로들 말해 왔어. 자부심도 있었고. 그런데 이제라도 순서를 바꿔야 할 것 같아. ‘맛과 멋’이 아니라 ‘멋과 맛’으로 말이지. 그렇게 하면 성산포에서 만났던 그 사람 눈에도 우리 동네 멋이 보일지도 모르잖아. 우리 자신은 더 말할 것도 없고. 이번 소리축제 끝나면 그간 제법 헤성헤성해진 형 머리칼 안주삼아서 막걸리 한 잔 하기로 해. ‘그까이꺼’, 내가 쏠게.

 

/송준호(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다른기사보기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 400
오피니언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