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택 사회부장
강현욱 지사가 두번째 눈물을 흘렸다.
물론 조실부모(早失父母)하고 청년 가장으로서 어린 동생들 5명을 부양하면서 적지않은 눈물을 흘렸겠지만 자신의 정치적 명운을 건 눈물은 이번이 두번째다.
첫번째는 지난 96년 15대 총선때.
14대 총선에서 신한국당 후보로 출마했으나 당시 호남을 휩쓴 황색돌풍에 밀려 낙선한데 이어 95년 민선 도지사선거에서 연거푸 고배를 마신이후 3번째 선출직에 도전했을때 일이다.
그는 당시 여당에서 지원해준 대규모 선거운동원들을 모두 물리치고 혈혈단신으로 부인 박순선 여사와 세딸만 데리고 군산시민들에게 읍소했다.
“이번에는 정말 일하고 싶습니다” 네 가족이 어깨띠를 메고 군산시내 사거리에서 새벽부터 밤늦도록 눈물로 시민들에게 호소했다.
결과는 황색바람을 등에 엎은데다 현역의원인 국민회의 강철선후보를 6천300표가까이 따돌리면서 52.4%의 지지로 금배지를 거머쥐었다. 당시 호남에선 유일한 여당 당선자이었다.
강 지사가 이번엔 군산 방폐장 유치를 놓고 다시 눈물을 흘렸다.
지난달 31일 ‘군산시민에게 드리는 호소문’을 강건한 어조로 읽어가던 강 지사가 어릴적 고향을 얘기하는 대목에서 서너차례 목이 메이며 말문을 잇지 못한채 눈시울을 붉히고 말았다.
깊은 상처와 갈등만 남긴채 무산된 부안 방폐장에 이어 마지막 승부수로 자신의 고향에 방폐장 유치를 통해 지역발전을 견인하겠다며 배수진을 친 강 지사에겐 이 순간 만감이 교차했을 것이다.
남자의 눈물에는 힘이 있다. 여자의 눈물과는 비교할 수 없는 파괴력이다. 왜냐하면 남자의 눈물에는 희소성의 원칙이 있기 때문이다.
남자는 평생 세번 운다고 한다. 태어날 때 한번, 부모 상(喪)때 한번, 국가가 망했을때, 요즘은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했을때라고 꼽는다.
하지만 남자의 눈물은 언제 어떻게 우느냐에 따라 그 파괴력과 평가가 극명하게 엇갈린다.
대표적인 것이 지난 2002년 16대 대선.
당시 민주당의 첫 정치광고인 ‘노무현의 눈물’ 편이다. 배우 문성근씨의 찬조 연설 때 눈물을 훔치는 노무현 후보의 모습을 본 국민들은 그 눈물에서 인간 노무현의 역경과 민주화경험을 상기시키면서 동질적 공감대를 형성하기에 충분했다. 그 눈물이 적지않은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자연스런 결과였다.
반면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는 대선 패배후 기자회견을 하면서 자신의 뺨에 흘러내리려는 눈물을 수도없이 훔쳐내야만 했다. 주위에선 너무 늦게 눈물을 보였다고 한탄했다.
‘감성의 시대’인 21세기는 ‘눈물도 전략’이다.
눈물의 정치가로는 영국의 처칠을 꼽을 수 있다.
‘CEO 히틀러와 처칠, 리더십의 비밀’이란 책을 보면 1940년 9월 독일군의 폭격으로 초토화된 런던의 외곽 이스트 엔드를 방문한 처칠은 전쟁으로 상처받은 시민들을 굵은 눈방울로 위로한다. 패배자의 눈물이 아니라 국민에 대한 깊은 애정에서 나온 처질의 그 눈물로 인해 전 영국인들은 결사항전의 의지를 다졌고 결국 전쟁에서 승리했다.
조지 W 부시 미대통령 역시 9.11테러 직후 대국민 연설에서 보인 눈물은 미국민의 압도적 지지를 이끌어냈었다. 50%대에 머물던 지지도는 84%까지 뛰어올랐다. 이는 1991년 걸프전 당시 아버지 부시 전 대통령의 지지도(75%)를 휠씬 능가할 뿐만 아니라 1941년 일본의 진주만 공격직후 루스벨트 전 대통령이 얻었던 것과 비슷한 수준이다. 테러와의 전쟁 지지도는 91%를 웃돌정도였다.
방폐장 유치에 정치적 명운을 건 강 지사도 눈물로 승부수를 띄웠다.
황색돌풍을 잠재웠던 강 지사의 눈물이 이번엔 전북의 미래와 역사를 바꿀 것인지 초미의 관심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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