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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월남패망·살인마의 값진 교훈 - 최준용

베트남·캄보디아 역사기행을 다녀와서

사이공의 영욕

 

동양의 진주 또는 파리라고 불리웠던「사이공」이 HoChihMinh 시라는 이름으로 바뀐 뒤 처음으로 밟아보는 VietNam 「탄손누트」공항은 확·증축으로 어수선하기도 했지만, 30도 가까운 습한 날씨로 짜증이 가중되는 것 같았다.

 

우리는 월남전쟁하면 남쪽의 월남과 북쪽 월맹간 자유와 공산 전쟁으로 기억하고 있으나, 사실은 월맹이 아닌 월남내의 베트공 소탕작전에 월남정부가 부패하여 이를 수행치 못하고 계속 밀리고 있는 상황에서 프랑스에 이어 미군이 개입되고 종국에는 한국, 필립핀 등 자유우방이 투입되었으나 전의를 상실한 월남 정부와 군부가 자멸의 길로 접어들어 1975. 4. 30 마지막 미 대사관이 폐쇄되면서 월남은 막을 내리고 만 것이다.

 

세계를 지배하던 Rome가 외세가 아닌 환락과 부패로 스스로 멸망한 것 같이 부패한 정부에 민심이 등을 돌린 월남은 바로 공산월맹과 싸운 것이 아니라 월맹의 지원을 받은 월남내의 공산당(베트공)의 내전을 수습하지 못하고 정부의 지도자는 국가보다 사리사욕에 눈이 멀었고 군부는 군부대로 미국의 지원된 군수품을 적에게 팔아먹는 땅에 떨어진 월남군은 세계 최강의 미군의 지원도 속수무책이고 2차대전의 폭탄투하보다 4배에 달하였어도 한강 투석으로 스스로 지킬 힘이 없는 나라는 외부 세력의 지원으로는 버틸 수 없다는 교훈을 그대로 보여준 것 같다.

 

사이공 근교의 「구찌」베트공 작전지구의 250㎞에 달하는 거미줄 같은 땅굴작전의 한 예를 들어보자. 이곳은 사이공강 유역의 경사지에 석회질로 덩치가 미군에 비해 훨씬 적은 체구의 베트공은 연약한 석회질 흙이지만 공기와 접촉해선 단단해지는 토질과 사이공강으로 기울어진 지형으로 미군의 독가스나 구멍마다 무한량의 물을 퍼부어도 경사로를 따라 흐르기 때문에 큰효과가 없었고 베트공의 원시 재래 동물 생포방법으로 참호, 함정 등에 죽창에 검은 물소배설물을 이용, 현대과학 첨단무기로 무장된 미군도 손을 쓸 수 없는 황당한 꼴이 되었고, 눈앞의 베트공이 쥐구멍같은 땅굴의 간단한 위장 출입구에서 사이공강과 연결된 동굴을 통하여 신출귀몰하는 그들을 당해 낼 수 없었던 것이다.

 

결국은 정글 전지역에 고엽제 초토화나 가스, 화공 총공세에도 미군작전사령본부의 바로 지하까지 땅굴을 파 월남인을 가장한 청소부 등 잡부의 신분으로 사령부의 비밀을 입수 총공세시에는 사령본부의 지하 벙커에서 여유로운 휴식을 함으로써 미군의 작전을 무기력하게 하였을 뿐아니라, 역공세를 취하여 그들을 혼란에 빠지게 한 것이다.

 

통일 후 수도는 월맹의 하노이로 월남의 수도였던 사이공은 베트남의 국부 Hochihminh의 이름으로 월남전을 승리로 이끈 지도자로 원래는 선생출신으로 월맹의 온전한 혁명가로 국부의 추앙을 받을 만큼 근검, 검소하게 살았고 통일 후도 같은 민족으로 포용하는 자세를 취했으며 처음에 살던 초가삼간에서 끝까지 독신으로 생을 마쳤고 사후에도 재산도, 한점 혈육도 없었고 자신도 화장하여 산하에 뿌려 달라는 유언이었으나 그의 추종자들이 쏘련의 영향을 받아 레닌과 같이 투명유리관에 그대로 모방하여 하노이에 안치되었기에 자기 유언을 배반한 추종자들을 지하에서 꾸짖고 있을 것 같다.

 

월남 패망 당시 미군 54.9만 한국 5만 필립핀 1.8만 태국 2.4천명으로 60만이 넘는 연합군을 직접 싸우지도 않고 배후에서 조종한 그는 베트남의 영원한 국부로 남을 것 같다.

 

세계 7대 불가사의(앙코르왓)

 

앙코르왓(거대한성)은 세계 7대 불가사의(이집트 피라미드, 페루 마추피추, 칠레 이스턴석상, 인도네시아 불교유적, 중국 만리장성, 인도 타지마할 묘)의 하나이고 세계 50대 관광지 중의 하나라는 상식으로 현재는 세계에서 몇 안되는 어려운 나라라고만 듣고 왔는데 이곳은 세계를 웬만치 돌아본 입장에서도 상식적인 눈의 높이가 앞으로 올라갈 수밖에 없는 확신을 보는 것 같았다.

 

우선 이 구조는 동서 1.5㎞×남북1.3㎞로 수백년을 힌두교 신전으로 오직 바흐라야만 7세의 39년의 불교 허용에 의한 사원으로 또는 왕궁으로 시설이 있지만, 자신의 사후의 묘라는 설과 같이 모든 벽과 기둥에 그의 흉상이 조각되었고 수많은 궁녀와 같이 갖가지 조각상이 있고 1층의 이무기세계 2층의 인간계, 3층의 천상계에 수많은 역사의 대서사시가 벽화와 조각 등으로 정교한 예술품으로 장식되어 있다.

 

중앙에 있는 탑을 기준으로 폭 100-200m의 운하는 바다를 의미하며 높이 65m의 중앙탑은 세계의 중심인 수미산을 사원의 회랑은 히말라야 산맥을 의미한다고 한다.

 

더구나 이 모든 석조물은 50k-200k에서 가져온 사암과 황토벽돌로 인하여 멸망후 수백년을 정글로 변하여 자생나무가 황토벽들을 뚫고 자란 것이 거대한 뱀이 석상을 휘감고 있는 형상으로 금방 우리 몸으로 기어오를 것 같은 환상이 펼쳐지곤 한다.

 

앙코르왓을 존재하게 한 Siem Reap(한국의 경주같은곳)은 Siem(지금의태국)에 의하여 점령된 곳이라는 뜻이라고 하니 캄보디아가 한참 잘 나가던 때에 용병으로 거느렸던 태국의 용병들이 캄보디아를 멸망시키고 잊혀진 이곳이 몇백년 후인 19세기 말에 프랑스의 여행객에 의하여 발견되어 앙코르왓과 비슷한 사원, 신전, 왕궁, 묘 등 현대 발굴된 것만도 웅장하고 화려하고 현대의 과학으로도 풀 수 없는 수수께끼가 많아 앞으로 더욱 많은 변화가 일어날 것 같다.

 

더구나 당시에는 모든 바깥 부분은 황금으로 장식되고 지붕은 무지개 색으로 찬란한 채색을 한 것으로 되었으니 그 화려함이 극치를 이루었을 것 같다.

 

캄보디아 왕국에 잠시 공산정권을 수립 200만 양민을 학살한 POLPOT를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겠다.

 

그는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프랑스에 유학한 인테리였으나 학교보다는 공산 이론에 몰입되어 같은 유학을 한 여성과 결혼, 귀국후 교편을 잡으면서 공산 추종자들을 규합 왕정을 무너뜨리고 정권을 잡자 무조건 지식인, 재산가, 외국인 등 100여만명을 잔인무도하게 학살하고 이 와중에서 기아, 질병에 시달리고 굶주림에 죽은자들이 100여만명을 넘었다고 하니 천만여 국민중에 20%를 처형했으니, Killing Field에서 보여준 것이 그 일부라고 할 수 있겠다.

 

불법 살인마의 말로는 자기의 죄값을 그대로 받는다는 것을 증명하듯이 결국은 그도 밀림으로 쫓기고 밀려 1999 잔당의 부하에 의해 살해된 것으로 추정되나 정확한 사인은 밝혀지지 않고 있다 한다. 이제는 옛 영화를 찾기 위해 노력하는 캄보디아 왕국으로 기지개를 켜고 있는 이곳에도 새빛으로 태어날 것 같고 또 그렇게 되기를 기원하면서 불법 폭군의 말로는 자기의 죄값을 그대로 받는다는 역사의 준엄한 심판을 실감하면서 아쉬운 SiemReap 공항을 밤에 떠나왔다.

 

/최준용(전 전북도공무원교육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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