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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 국회의원 이광철 - 상무대 영장

꿈틀거리는 5월 정신

80년 5월, 전국적으로 뜨거운 민주항쟁의 불길이 타올랐다. 학살자 전두환 신군부 집단은 민주주의를 염원했던 애국시민들을 향해 총부리를 겨누었다.

 

당시 4학년이었던 나는 삭발 투쟁에 나섰고, 5.15 시위와 민주화투쟁을 주도한 혐의로 수배를 당했다.

 

5월 18일 0시 경, 공수부대가 전북대 학내 진출을 시도하면서 비로소 5.18의 서막이 올랐다. 당시 쫓겨 다니던 나와 동지들은 계엄군이 수배자들만 잡아갈 것이라고 생각한 나머지 담을 넘어 급히 피신했다.

 

그러나 그것은 오산이었다. 학내로 진입한 공수부대는 학생회관에 남아 있던 학생들을 착검한 M16 개머리판으로 때리고 짓밟기 시작했다. “너, 이광철이지?” 그들은 이 한마디 외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무차별적으로 짓밟고, 굴비 엮듯 엮어서 개처럼 35사단 헌병대 영창으로 끌고 갔다.

 

그 과정에서 옥상으로 피신했던 전북대생 이세종(당시 2학년)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공수부대가 휘두른 개머리판에 머리가 깨지고 잔혹하게 짓이겨진 채 학생회관 밖으로 내던져진 것이다. 공수부대의 무자비한 폭력에 목숨을 잃은 전국 최초의 사례였다.

 

나는 아직도, 아니 평생 이세종을 잊을 수 없다. 계엄군에게 무자비하게 찢기고 짓밟히면서 그 때 그는 무얼 생각했을까. 혹시 비겁하게 담을 넘어 도망갔던 나를 비웃었던 건 아닐까. 수배자가 아니면 괜찮을 것이라고 달랬던 동지들을 원망하지는 않았을까.

 

그가 우리 곁을 떠난 후 26년이 지났지만, 우리는 해마다 5월 17일이면 그를 추모하고 있다. 그를 추모하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잊을까봐’이다. 그를 잊는 것은 흡사 우리 자신을 잊어버리는 것만큼이나 고통스러운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잊힐까봐’이다. 그가 잊혀질지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서 평생 자책하며 살아가고 있다.

 

나는 테니스장 잡부, 중국집 배달부로 일하다가 3개월 만에 경찰에 연행됐다. 모진 고문 끝에 보안대와 35사단 헌병대를 거쳐 끌려간 상무대 영창의 첫 인상은 ‘비겁’하게 다가왔다. 목숨 바쳐 민주화 운동을 했다는 자부심은커녕 끼니때면 밥, 잠잘 때면 이불 때문에 싸우는 사람들을 보며 실망을 금할 수 없었다. “폭도 홍길동, 취조 받으러 왔습니다”를 연발하는 그들의 모습에는 공포만이 도사리고 있는 것 같았다. ‘광주는 총칼에 맞서 싸우지 않았는가? 그래도 광주 사람들은 뭔가 다를 줄 알았는데..’

 

그러나, 그들 내면에 5.18이 여전히 살아 있다는 것을 아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5월 정신은 그들을 하나로 묶었고, 상무대는 곧 ‘저항’으로 들끓었다.

 

‘지금은 비록 비굴하게 여기 있지만, 우리는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것이다. 우리는 항쟁의 주역이며 민주주의 투사들이다’

 

우리는 헌병의 눈을 피해 몰래 토론을 했고, 스스로를 교육해 갔다. 시민군 지도자였던 정상용(전 국회의원)과의 만남도 그 때 이뤄졌다. 그와는 당시 정세, 5.18의 성과와 한계 등을 주제로 토론하곤 했다.

 

영창에서 나는 자신도 모르게 선두에서 저항하는 ‘지도자’가 돼 있었다. 그러던 중 일어난 사건이 일명 ‘쌍10절 사건’이다. 10월 10일 일어났다 해서 이렇게 이름 붙여진 이 사건에서 나는 ‘죄인이 아닌 죄수’들을 이끌고 ‘굴욕적 삶’을 끝내기 위해 ‘저항’을 주도했다.

 

이광철은 어느 새 ‘상무대 벌통’이 되었다. 상무대를 벌집 쑤시듯 한다, 벌통이 되도록 맞으면서도 굴하지 않고 저항을 이끌어냈다는 의미로 붙여진 별명이었다.

 

쌍10절사건 이후 상무대 영창은 책과 면회가 허용됐고, 정량의 식사가 공급될 만큼 눈에 띄게 달라져 갔다.

 

그런 변화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하나 더 있었다. 바야흐로 80년 5월의 정신이 전국으로 번지기 시작하고, 87년 6월항쟁으로 치달아가는 민주화운동의 거대한 물줄기가 샘솟기 시작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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