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알고 있는 춘향전은 사실 단일본이 아니다. 완판본 ‘열녀춘향수절가’가 가장 널리 알려져 있기는 하지만 1754년의 한시본(漢詩本, 200句)과 경판본, 안성체본, 완판본 등의 목판본 그리고 필사본, 일사 방종현 선생 소장본, 신재효본 등을 모두 합치면 80여 종에 이른다. 사실은 이마저도 적은 편일지도 모른다. 구비전승(口碑傳承)되는 내용까지 합치면 춘향전의 사본은 더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이본이 많다고 해서 춘향전이 가짜라고 판단할 수는 없다.
정도의 차이가 있기는 하겠지만 사본(寫本)은 존재할 수밖에 없다. 같은 자리에서 봤던 사건이라 하더라도 돌아가서 이야기하는 내용이 사람마다 제각각인 것이 현실인데 상상 속의 이야기이거나 아주 옛적의 이야기야말로 그 다양성의 폭은 훨씬 넓을 수밖에 없다.
이런 이야기가 처음부터 허구(虛構)를 전제로 하는 소설 등의 내용이라면 사람들은 그 다양성에 대해서 큰 부담을 갖지 않고 지나칠 것이다. 하지만 그 다양성의 대상이 정치적인 혹은 종교적인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면 사정은 달라진다.
최근 한 일간지에 특정 종교에 대한 기사가 실렸다. 최근에 해석을 마친 사본 하나가 그 종교의 핵심적인 진실을 뒤집을 수도 있다는 내용이었다. 종교에 대한 사전지식이 없는 사람이라면 그 내용에 상당한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여러 사본 중 최근 해석을 마친 그 사본 하나 때문에 가장 보편적인 종교의 진실과 역사를 다시 봐야 한다는 기사내용은 다분히 선정적이다.
만일 그 기사내용이 사실이라면 그 신문뿐 아니라 모든 국내 신문이 대서특필을 해야 할 특종감이다. 그 기사의 발원지가 되는 외국에서는 우리나라보다 더 심각하게 이 문제를 다루었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외국은 물론이고 국내의 다른 매체에서 거의 기사화되지 못했다. 그 이유 하나는 사본(寫本)이 갖는 특성 때문이다. 유일본이라 하더라도 매우 신중하게 접근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기본이다. 하물며 사본이라면 그 다양성 속에서 진실을 캐내는 작업이 추가된다는 점에서 간단치 않다. 다른 한 가지 이유는 이미 여러 차례 그런 류의 기사가 있었다는 점이다.
‘선무당이 사람 잡고 반풍수가 집안을 망친다’는 속담이 있다. 설익은 정보와 특종에 대한 집착으로 사실을 호도하는 기사는 이제 활자화되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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