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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대] 촌지(寸志)

퇴계 이황(李滉)에게 제자가 물었다.

 

“의성(義城)의 선물에서 마른 고기는 물리치고 필묵(筆墨)은 받았으니 만일 그것이 의로운 것이라면 모두 받아야 할 것이요, 의롭지 않은 것이라면 모두 받지 않아야 할 것인데 어째서 그 크고 작은 것을 가려서 받았습니까?”

 

이에 대해 퇴계는 이렇게 대답했다.

 

“내 일찌기 주자가 조자직(趙子直)의 선물에서 인삼과 부자(附子)는 받고 금품(割俸之物)은 물리쳤으며 또 어떤 사람의 선물에서는 강게(江蟹)는 받고 베(布)는 물리친 것을 보았다. 대개 그 때에 조공(趙公)이나 어떤 사람은 다 잘못이 있었지만 그 허물이 절교할 만큼 크지 않았기 때문에 가벼운 물건은 받아서 절교하지 않은 뜻을 보이고 중한 물건은 물리쳐 그 사람의 잘못을 깨우친 것이다.”

 

이는 퇴계집(退溪集)에 나오는 일화로 선물과 뇌물의 차이를 설명해 준다. 나아가 그것을 물리치고 받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말해준다.

 

요즘 교육계에 또 다시 촌지(寸志)가 문제되고 있다. 교육부는 초중고 교사가 학부모나 관련단체로 부터 10만원 이하의 촌지를 받더라고 징계를 한다고 발표했다. ‘교원 금품·향응 수수 징계기준’을 마련해 금품액수나 교사가 먼저 요구했는지 여부, 직무관련성, 위법행위 여부에 따라 29개로 세분화한 것이다. 다만 3만원 이하의 식사를 대접받았을 경우에만 징계에서 제외된다. 이와 관련 교육단체들은 “일부 때문에 매도돼 불쾌하다”는 반응인 반면 학부모들은 대부분 “환영한다”는 분위기다.

 

원래 촌지는 마디 촌(寸)과 뜻 지(志)로 이루어진 일본식 한자어다. ‘손가락 한 마디만한 뜻’으로 ‘아주 작은 정성 혹은 마음의 표시’라는 의미를 지닌다. 미의(微意) 또는 박지(薄志)라고도 한다. 말하자면 자신이 주는 선물을 겸손하게 이르는 말이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뇌물의 성격을 띤 금품’으로 변해 버렸다. 문제는 마음이 담긴 선물과 의도가 있는 뇌물을 구분하기 쉽지 않다는 데 있다. 그래서 획일적인 기준을 정해 처벌을 하자는 것이다. 갈수록 각박해지는 세태를 보는 것 같아 씁쓸하기 이를 데 없다. 그러나 어쩌랴.

 

퇴계와 같은 시대의 성리학자 이언적(李彦迪)은 회재집(晦齋集)에서 이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만일 작은 물건을 받으면 큰 물건을 반드시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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