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세상살이를 하면서 겪는 설움이 어디 한두가지겠는가마는 그 중에서도 헐벗도 굶주리고 살곳이 없는 설움은 참으로 견디기가 힘이 든다. 의(衣)식(食)주(住) 즉, 인간이 살아가는데 반드시 필요한 이 세가지 요소는 의지나 인내만으로 버티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주관적인 가치기준과는 상관없이 의식주의 유지상태만을 보고 객관적인 행복의 척도로 삼아버리기까지 한다.
자본주의가 날로 발전하는 덕에 이제 입고 먹는 문제는 웬만큼 해결이 됐다. 물론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적어도 겉으로 보아 입고 먹는 것만으로는 빈부 차이를 느낄 수가 없게 됐다는 말이다. 다시말해 의식(衣食)의 격차가 더 이상 사회적 이슈가 되는 시대는 지나갔다는 얘기다. 따라서 앞으로 풀어나가야 할 과제는 복잡다단한 주거욕구를 어떻게 조절할 것인가로 모아질 것 같다.
한동안 전국의 아파트 분양가가 합리적 수준이어서 집 장만하기가 수월한가 싶더니 언제부턴가 서민들은 새 아파트 분양받기가 하늘에 별따기만큼이나 어려워 졌다. 침체된 주택경기를 부양시킨다는 미명 하에 정부가 분양가를 자율화시킨 후에 벌어진 일이다.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분양가에 놀라 국민들이 분양 원가를 공개하라고 아우성을 쳤지만 정부와 업체는 시장경제원리를 앞세워 일축했다. 당연한 귀결로 새 아파트값은 고공행진을 했다.
그러나 어떤 경우든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는 법이다. 더구나 오르막이 가파랐다면 내리막도 가파른 것은 정해진 이치다.
돈 많은 부자들이 이제 웬만큼 아파트를 사 모았는지 새 아파트 분양률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고 한다. 지방은 말할 것도 없고 그 잘나간다던 서울도 대부분 분양률이 30%에도 못미친다는 것이다. 상황이 심각한 업체는 인건비와 운영비라도 절약하기 위해 사실상 문을 닫는 형편까지 왔다고 한다. 자업자득이라고 밖에 달리 할 말이 없다.
주택업체가 잘못되는 것이 고소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또 고가 아파트나 여러 채의 집을 사 세금폭탄을 맞게 된 부자들의 고통을 즐기자는 것도 아니다. 다만 사람이 사는데 절대 필요한 집을 투기상품으로 삼아 돈을 긁어모으는 것은 사람이 취해야 할 도리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어서 하는 얘기다. 지금은 비록 부자인 당신도 언젠가는 '집없는 설움'을 당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몰라서 그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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