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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악기 제작자 김성철씨 악기 제작 콩쿠르 입상

산업화는 기계문명을 가져왔고 이로 인해 현대 사회는 대량생산을 미덕으로 삼게 되었다. 큰 마음을 먹고 공연장에서나 들을 수 있던 오케스트라 곡이라든가 명장들의 리사이틀을 저렴한 가격의 CD 혹은 DVD를 구입해 안방에서, 심지어는 길거리에서 걸어다니면서 듣게 된 것도 이런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 그럼에도 클래식 음악은 아직까지도 수공업의 미덕이 존재하는 몇 안되는 장르다. 그 가운데에서도 현악기 제작은 기계가 아직도 장인의 손놀림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테크닉을 넘어서 정신과 혼을 생산품 안에 불어넣는 악기 제작자에게 수여하는'장인(마이스터)'이라는 칭호는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유효하다.

 

2004년부터 하노버에서 현악기 제작을 하고 있는 김성철(37)씨 또한 그러한 장인정신의 추종자 중 한 명이다. 그는 5월8일부터 13일까지 개최된 제11회 비에냐프스키 악기 제작 콩쿠르에서 바이올린 부문에 한국인 최초로 입상했다. 국내에는 바이올린 연주 콩쿠르로 유명한 이 대회는 1935년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처음 개최되었으며 1957년부터는 5년에 한 번씩 악기 제작 콩쿠르를 병행하고 있다. 그동안 한국 출신의 악기 제작자들이 미국이나 일본에 그 활동이 집중되어 있는 것을 감안할 때, 클래식 음악의 본고장인 유럽에서의 그의 쾌거는 남달리 인정받을 만하다.

 

이채롭게도 바이올린을 제작하기 전 그의 직업은 오보에 연주자였다. 무려 15년동안 오보에를 전공해온 그가 독일로 유학온 계기도 오보에 공부를 위한 것이었다.

 

그러던 그에게 갑자기 호흡기에 심각한 질병이 찾아와 더 이상 오보에를 연주할수 없다는 판정을 받았다. 2년 간의 슬럼프를 딛고 2000년부터 바이올린 제작에 도전한 그의 이번 콩쿠르 입상은 개인적으로도 오랜 역경을 딛고 일어선 의미있는 일이다.

 

다음은 김씨와 일문일답.

 

--오보에는 관악기인데 현악기 제작으로 관심을 돌린 점이 특이한데 특별한 계기가 있는가.

 

▲오보에를 연주하지 못하게 된 다음에도 음악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었다. 여러 가지 일들을 찾다가 현악기 제작이 눈에 들어 왔다. 오보에와 같은 관악기 제작에는 부분적으로 기계를 도입한다. 하지만 고급 현악기는 아직도 100% 기계가 아닌나무와 손을 가지고 제작하며, 이는 장인적인 작업 예술을 추구하는 정신과 상통한다고 생각했다.

 

--악기 제작 콩쿠르는 어떤 형식으로 진행되는가.

 

▲비에냐프스키 콩쿠르의 경우 1차적으로 블라인드 테스트를 거쳐야 한다. 악기들은 비밀번호를 달아서 제출되며 이를 가지고 심사위원들은 악기 소리, 나무제작 과정, 정교함, 색깔, 과거 명기들의 모방수준을 평가한다. 이번 콩쿠르의 경우 전 유럽에서 150명이 참여했다. 이렇게 본선에 12대의 악기가 진출하고 나면 전문 연주자들이 이 악기를 가지고 연주를 하며 관객들이 점수를 매긴다.

 

--한국 출신의 현악기 제작자들을 살펴보면 미국이나 일본에서 공부한 이들이두드러진다. 유럽, 특히 음악의 본고장이라 할 수 있는 독일에서는 드문 이유가 무엇인지.

 

▲현실적인 제약이 크기 때문이다. 독일에서 악기 제작 공부는 일종의 직업훈련이다. 정부로부터 노동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이 자격이 몹시 까다로워서 아예 공부할 기회 자체를 박탈당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 공부 과정과 악기 제작의 수준은 그 어느 나라보다도 정통성이 있다.

 

--그런 까다로운 과정을 본인은 어떻게 통과했나.

 

▲구하면 얻는다는 격언이 있지만, 나의 경우는 스승이 많이 도와주었다. 헤르포르트에서 활동하는 바이르메어라는 장인이었는데, 무작정 찾아가서 악기 제작을배우고 싶다며 열의를 적극 표현했다. 행정적으로나 법적으로 여러 가지 결격 사유가 많았음에도 그는 생면부지의 나를 오로지 나의 열정 하나만 믿고 허가를 받을 수 있도록 애써주었다. --연주자들은 정작 몇 백 년씩 묵은 스트라디바리우스나 과르넬리와 같은 악기들을 선호한다. 모던 악기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는 이들도 많은데.

 

▲그런 점 또한 현악기가 가진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악기의 진정한 가치는 당장 제작한 순간에 인정을 받는 것이 아니라 수십년, 수백년이 지나야 알 수 있다.

 

내가 이 일을 하는 것 또한 당장의 명성이나 부귀영화를 위해서가 아니다. 몇 백년 뒤에 내 이름으로 제작한 바이올린이 명기의 대명사로 인정을 받는다면 그 또한 기쁨이 아닐까. 또한 이와 같은 현대악기의 중요성과 잠재력을 인정하는 전문 연주가들도 적지 않다. 가장 대표적인 인물로 크리스티안 테츨라프와 같은 바이올리니스트를 들 수 있다.

 

--그렇다면 본인의 악기를 연주해 주었으면 하는 연주가가 있는가.

 

▲누구든 빼어난 명 연주가가 나의 악기를 연주해준다면 크나큰 영광일 것이다.

 

그러나 악기에도 궁합이 있으며, 악기 제작자가 추구하는 바와 연주가가 추구하는바가 궁합이 잘 맞아야 최고의 음악을 이끌어낼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첼리스트 조영창씨가 꼭 내 악기를 연주해주었으면 하고 바란다. 그 연주가의 따스한 소리와 음악성이 내가 악기에 추구하는 소리와 일맥상통하는 바가 있기 때문이다.

 

--대중적으로 인기있는 전통 명기는 대체로 이탈리아에 편중되어 있다. 현악기제작 활성화에 있어 이탈리아와 독일을 비교한다면.

 

▲전통은 물론 이탈리아가 앞서 있다. 그러나 스트라디바리우스라든가 과르넬리가 활동하던 시기에 비교하면 현대에 와서는 이탈리아는 침체된 측면이 없지 않다.

 

그에 비하면 독일, 영국, 프랑스 등지가 월등한데 오케스트라 활동이 활성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악기를 제작할 때 어떤 측면에 역점을 두는가.

 

▲모양의 아름다움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역점을 두어야 하는 것은 당연히 소리이다. 개인적으로 힘이 있으면서도 부드럽고 따스한 울림을 선호한다. 그런소리는 호소력이 있기 때문이다.

 

--연주가에서 제작자로 전향을 하면서 아쉽거나 더 보람된 면이 있다면.

 

▲처음에 오보에를 포기해야 할 때는 정신적으로 충격을 많이 받았다. 2년 동안아무 것도 할 수 없을 만큼 인생의 슬럼프를 겪었다. 악기 제작을 하면서 그러나 오히려 삶에 대해 연주가 시절보다도 훨씬 만족하고 있다. 음악을 만드는 만큼 악기를 만드는 성취도가 나를 즐겁게 한다. 무엇보다 한국 사람으로서 독일 본고장에서 전문성을 인정받고 살아가는 것이 가장 큰 보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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