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만성(전 전주 북일초등학교 교장)
백로가 지났으니 이슬이 내리는 가을이 왔다.
산과들에는 나뭇잎이 꿈틀어가고 들에는 오곡이 무르익어가는 가을, 해마다 가을이면 학교마다 운동회를 열개 된다.
어른들은 학창 시절의 운동회에 대한 추억들이 모닥불처럼 피어오른다. 나의 어린 시절 운동회는 너무나도 멋있고 그때 그 시절을 잊을 수가 없다.
지금처럼 방송매체가 잘 되어 있지 않고 열약한 문화공간에서 전교생 단체연습의 제일 중요한 프로가 행진 연습이었다.
팔열 종대로 본부석을 향해 걸어가는 모습, 군인도 그렇게 씩씩하게 걸었을까?
오르간 행진곡에 발맞추어 큰북 광음소리에 발맞추어 걷는 모습이 얼마나 의젓했던지, 전열 좌우 열 맞추어 앞 친구 머리통을 보며 군사훈련 이상으로 씩씩하게 걸었다. 불호령으로 지휘했던 체육선생님, 뽀얀 먼지 뒤집어쓰고 연습했던 기마전, 검정고무신에 검정 책포를 옆구리에 끼고 어두워지는 시골길을 가노라면 허기진 배가 전신 시려온 그 시절, 그러나 그때의 운동회 날은 면민의 날보다 화려했고 운동장 주변에 어울어진 수많은 사람들, 그리도 많이 모였을까 정말로 축제의 한마당 이었다. 오늘날의 학교 운동회 중 빼놓지 않는 줄다리기는 생산과 수확에서 수확에 대한 예축(豫祝)이라는 점까지 되살릴 수는 없다 하더라도, 적어도 그것의 목표가 승부의 과정을 통해 체험하는 협동심과 일체감에 있다는 사실만큼은 확인되었으면 좋겠다.
또한 달리기나 구기와 같은 종목만이 아니라 우리민족의 고유한 놀이와 경기, 호흡법 등이 함께 포함되었으면 한다. 예를 들어 택견 같은 무예나 씨름 같은 겨룸, 혹은 단전호흡이나 기천문 같은 심신수양법은 우리학생들에게 매우 유익한 종목이라 생각된다. 또한 고지탈환 전쟁놀이 속에서 그 속에 맞는 북한의 대포동2호에 걸 맞는 불타는 함성의 웅변이 받춰 준다면 너무 멋있으리라 여겨진다.
택견이나 씨름 그 자체의 체력을 단련하는데 적합한 종목이어서 그것이 지니는 민족적인 특성이나 생산노동과 관련한 깨우침에 적지 않은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택견은 살상이나 공격을 목표로 하기보다는 방어와 조화를 목표를 하는 점에서 심신수련에 매우 좋은 종목이라 생각된다.
씨름 또 어떤가? 물론 씨름에서도 승부를 가리는 것은 필연적인 결과이지만, 씨름경기 안에서도 승부를 매개로 승부 이상의 또 다른 의미가 담겨져 있다.
나는 씨름을 보노라면 묘하게도 황소싸움을 머릿속에 떠올리곤 한다. 소는 우리민족의 오랜 농경생활 안에서 필수불가결한 생산력의 중심이다. 농군의 힘자랑이자 생산력의 뽐내기 였다고 보여 진다.
중국에서 아시아경기대회가 열렸을 때 개막식에서 수천 명의 남녀노소가 쿵후의 동작으로 집단체조를 하는 장면이 있었다. 그처럼 학교운동회가 그 지역의 전통적 놀이와 경기를 현대화시켜 활성화 하는 하나의 실험장이자 실천의장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 이다.
이렇듯 운동회에서의 경기종목이 세계 표준화 혹은 국제 규격화되기 보다는 각 지역을 전통적인 생산과 생활의 모습을 반영함과 더불어 그것이 단지 운동경기의 승부로 끝나는 것이아니라, 참가한 모두가 하나로 되었으면 하는 것이 나의 바람이다.
학생과 학부형이 함께 참여하는 풍물 굿도 몰아치고 남녀노소 모두 함께 동작을 일치시키기도 하고, 덩실덩실 춤을 추기도 하면서 육체도 단련하고 신명도 고양시키는 신바람 나는 한판의 대동놀이! 만국기가 어우러지고 주변에 허수아비가 줄지어진 우리의 운동회가 그 고장의 축제로 탈바꿈해 나갈 때 끈끈한 이웃 간의 정이 영글고 우리 어린이들의 마음속에 지워지지 않는 운동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김만성(전 전주 북일초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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