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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대] 벌초

“처삼촌 묘에 벌초하듯 한다”는 말이 있다. 무슨 일을 함에 정성을 들이지 않고 건성으로 한다는 뜻이다. 이와 비슷한 것으로 “벌초자리는 좁아지고 배코자리는 넓어진다”는 속담도 있다. 벌초를 마지못해 하는 탓으로 그 구역이 차차 줄어들고 작아도 될 배콧자리(상투를 얹히려고 머리털을 깎아낸 자리)는 자꾸 넓어지기만 한다는 의미다. 북한지방의 속담으로 주객이 전도됨을 비유한 것이다.

 

추석이 보름여 앞으로 다가오면서 휴일이면 벌초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여름 허리보다 높이 자란 잡초들이 산소 입구부터 막아선다. 봉분 위에도 키 큰 잡초가 무성하다. 잡초를 뽑아낸 뒤 예초기를 등에 지고 한쪽부터 차근차근 깎아 나간다. 어느새 등에 땀이 밴다. 갈퀴로 긁어내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듯 말끔해진다. 이 때 잘못하면 예초기에 돌이 튀어 부상당하는 경우도 있다. 또 벌에 쏘이거나 독사에 물리는 경우도 있어 주의해야 한다. 금화벌초(禁火伐草)라 하여 불도 조심해야 한다.

 

이같은 벌초는 보통 음력 8월 1일부터 보름 이전에 마치는 게 상례다. 지금은 예초기가 나와 수월해졌으나 그 전에는 낮을 잘 들게 갈아서 가지고 갔다. 묘지가 멀면 낫목에서 부터 날부분까지 새끼로 가지런히 감았다.

 

제주도에선 자손들이 살아 있으면서 벌초하지 않는 것을 ‘죽은 아방(아버지의 방언)곡두에 풀도 안그치는 놈’이라 해서 제일 불효로 쳤다. 그래서 자손들이 육지에 나갔다가도 8월이면 돌아와 선묘(先塋) 벌초에 나서야 했다. 벌초할 시기가 지나도 벌초 안한 묘지는 그 후손이 끊어졌다 해서 ‘골총’이라 불렀다.

 

조상의 묘를 모시는 것은 벌초만이 아니다. 사초(莎草)라 해서 훼손된 묘지에 떼를 입혀 잘 다듬는가 하면, 소분(掃墳)이라 해서 경사스런 일이 있을 때 그 사연을 고하고 제사를 지냈다.

 

하지만 이같은 풍습도 크게 변하고 있다. 도시로 나가 바쁘다는 핑계로 돈을 주고 벌초를 맡기는 것이다. 이맘때면 농협이나 산림조합, 벌초전문 대행업체에 이러한 주문신청이 쇄도한다고 한다. 그래도 그것은 나은 편이다. 전국 2000여만 기의 분묘중 70% 가량이 무연고로 추정된다고 한다. 세대가 내려갈수록 더 할 것이다. ‘처 삼촌 벌초하듯’이 ‘대접 잘 받았다’는 뜻으로 다가올 날도 머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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