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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대] 이영춘 생가

한국의 슈바이쳐라 불리는 쌍천(雙泉) 이영춘(1903-1980) 박사는 우리나라 농촌의료 활동의 선구자로 꼽힌다. 1930년대 농촌에 뛰어 들어 가난과 질병에 시달리는 농민들에게 의료의 헤택을 베푼 농민의 성자였던 것이다. 군산 개정병원과 군산간호대학, 모세스영아원 등이 그가 남긴 땀의 발자취이다.

 

그는 원래 평남 용강출신으로 평양고보와 같은 학교 사범과를 졸업하고 대구공립보통학교 교사를 지냈다. 그러던 중 늑막염에 걸려 3개월을 심하게 앓고 난뒤 의사가 되겠다고 결심한다. 1929년 세브란스 의전을 졸업한 후 황해도에서 의원을 개업했다 접고, 모교에서 병리학 강사 생활을 한다. 마침 고교 은사가 일본인 대지주 구마모토(熊本)에게 그를 추천, 전북에 내려오게 된다. 괜찮은 대우와 함께 일본인이 조선의 소작인을 위해 의사를 초빙한 뜻에 공감했던 것이다.

 

당시 옥구 개정에 주 사무실을 둔 구마모토는 게이오 대학출신으로 옥구 정읍 완주 등에 3000정보에 이르는 농장을 가지고 있었다. 거기에 딸린 소작인만 3000세대 2만명에 이르렀다. 그 때는 일본인을 포함해 전국의 의사가 800명에 불과해 병원문턱이 턱없이 높을 수 밖에 없었다. 그는 1935년 농장 사무실 한켠을 개조해 ‘자혜진료소’라는 간판을 걸고 진료를 시작했다. 직접 환자를 찾아 다니며 녹초가 되도록 진료를 하면서도 토종의학박사 1호를 취득했다.

 

광복 이후에도 그의 인술은 계속돼 농촌위생연구소를 설립해 호남은 물론 충청과 영남에 까지 무의촌 진료활동을 펼쳤다. 또 이 연구소를 통해 걸출한 의학자를 배출하기도 했다. 그는 큰 족적을 남겼지만 부인과 자녀들에게 집한 채 남기지 않았다.

 

개정병원과 간호대학은 2001년 경매를 거쳐 경암학원으로 넘어갔고 그가 살았던 ‘이영춘 생가’는 2003년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200호로 지정됐다. 이 건물은 구마모토가 별장으로 지은 것으로 서울의 총독관저와 서로 잘 지으려 경쟁했다고 전해진다. 프랑스인이 설계하고 일본인이 시공했으며 외부는 유럽식, 내부는 일식과 한식이 절충된 독특한 양식이다. 고풍스런 아름다움을 간직해 TV드라마 ‘야인시대’ ‘빙점’ ‘모래시계’ 등을 촬영했다.

 

최근 이 집에 거주하는 후손들이 학교측의 요청으로 각종 유물과 함께 집을 비워줘야 할 형편이라고 한다. 딱한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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