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 한글날로써 세종대왕께서 백성을 위해 훈민정음 즉 한글을 만들어 정식으로 공포한지도 561년이 된다. 훈민정음은 글자그대로 백성을 올바르게 가르치는 바른 소리이다.
훈민정음을 적은 책은 1940년에 경북 안동에서 발견된 것으로 국보 70호로 지정되었고 지금은 유네스코 세계기록 유산으로 등록되었다. 훈민정음은 극비리에 만들어졌으며 이는 한글 창제 반대자 최만리의 지적대로 이 사실이 중국에라도 흘러 들어가면 자칫 외교문제로 까지 비화 될수있기 때문이었다. 조선 개국왕 이성계의 < 즉위교서>에 나타나듯이 조선왕조는 중국의 제후국으로써 명나라에 “지성스런 사대(事大)”가 조선 외교의 기본노선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 한자와 다른 우리고유의 글자를 갖는다는 것은 중국으로는 일종의 반란으로까지 볼수도 있었다. 최만리의 한글에대한 반대상소는 이런 현실을 대변했다고도 볼수 있다.
세종대왕께서 한글을 만든 동기는 훈민정음 서문에서도 나왔듯이 나랏말씀이 중국과 다르다는 점 , 그리고 한문이 어려워 하고 싶은 말도 제대로 표현할수 없음을 안타갑게 여긴점이다. 이에 더하여 세종대왕의 한글창제 동기가 더 자세히 세종실록에 나타나있다.
세종대왕의 “ 모름지기 세민(細民: 빈민)으로 하여금 금법(禁法: 해서는 안되는 행위)을 알게하여 두려워서 피하게 함이 옳다”또는 “내가 만약 언문으로 삼강행실(三綱行實)을 번역하여 민간에게 반포하면 어리석은 남녀가 모두 쉽게 깨달아서 충신,효자, 열녀가 무더기로 나올것이다”라는 말씀속에 훈민정음 창제의 또다른 동기도 들어있다.
훈민정음은 발음기관을 본떠서 만들었기에 과학적이라고한다.여기에 또 다른 이설도 있는데 조선후기 이익(李瀷)의 <성호사설> 에는 한글은 원나라 세조때 만들어진 몽고글자를 본떳다고 하고 있고 또는 인도의 산스크리트를 모방했다는 주장도 있다. 촤현배 선생은 정인지 서문을 근거로 전대(前代)의 것을 모방함이 없이 자연스럽게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성호사설>
이학설이 지금은 정설로 굳어졌다. 다시 돌아오는 한글날을 보며 훈민정음 즉 한글에 얽힌 내용을 되새겨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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