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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 띄우는 새해 첫날 편지]그대와 나, 모두가 어깨춤 절로나는 한해가 되었으면…

박성우(시인, AALF조직위원회 정책실장)

박성우(시인, AALF조직위원회 정책실장) (desk@jjan.kr)

미루나무도 싸리나무도 대나무도 한시도 쉬지 않고 열심히 눈을 쓸어내고 있지만 눈발은 속수무책으로 내려 아무런 대책도 없이 푹푹 쌓이고만 있는 폭설의 십이월 삼십일입니다.

 

오늘이 지나면 이제 곧 묵은해가 가고 새해가 밝아오겠지요. 부디 새해에는 맑고 밝고 고요하고 섬세하게 아름다운 날들로만 채워지는 한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니 그렇게 되기 위해서 부지런히 걷고 뛰며 있는 힘껏 노력하는 뜨거운 한해가 되어야 하겠지요. 빈둥빈둥, 아무런 노력 없이 공짜로 얻어지는 것은 세상에 없을 테니까 말입니다.

 

돌아보면 참 허망키도 하고 한편으로는 마냥 아쉽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큰 탈 없이 그냥저냥 잘 보냈으니 됐다는 위안을 삼기도 합니다. 어쩌면 이 속수무책의 눈발은 묵은 것들을 죄다 덮어버리고 세상 모든 이들이 깨끗한 발자국을 또박또박 새롭게 눌러 찍으며 희망찬 새해로 나가라고 그러는 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다만, 강 건너 마을 풍경도 그대에게 가는 길도 끝끝내 막아버린 이 눈발이 닭장과 돼지막과 우사와 같은 짐승들의 집이나 복분자와 딸기와 상추와 같은 식물들의 집을 막무가내로 덮치는 일은 절대로 없어야 할 텐데 하는 걱정이 앞서기도 합니다. 부디 그런 일이 절대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뿐입니다.

 

생각나는지요?

 

새천년이 되었다고 요란을 떨던 지난 이천년의 첫날 말입니다. 그땐 정말이지 세상이 홀라당 뒤집어져서 희망만이 가득한 새로운 세기가 오는 줄만 알았었지요.

 

싸움과 가난과 불신과 상처의 20세기는 죄다 가고 희망과 사랑과 믿음과 최첨단으로 이루어진 21세기, 꿈만 꾸면 자동으로 이루어질 것 같은 세상을 열던 그 해 첫날 말입니다. 그렇지만 요새는 아무도 그 새천년을 맞이하던 시절에 대하여 얘기 하지 않습니다. 불과 몇 년 전의 일이지만 아주 오래전 얘기처럼 말입니다. 어쩌면 21세기 첫날을 맞던 그때나 2008년을 맞이하는 지금이나 별반 달라진 게 없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또 한편으론, 좀 은근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번에 맞이하는 뜨겁고 희망찬 새해는 일년 내내 식지 않고 오래오래 은근하게 오래가기를 바랄뿐입니다.

 

저는 지난봄에 아빠가 되었습니다. 아빠가 되었다는 것은 남들만큼은 아니어도 자식새끼 뒷바라지 할 준비가 되었다는 것, 남들만큼은 아니어도 적어도 내 새끼는 내가 키워 낼 만발의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이겠지요. 그렇지만 저는 단연코 그렇지 못합니다. 굳이 저 뿐만은 아니겠지요. 어린 것은 그새 ‘아쁘 아쁘’하며 아빠인 저를 찾습니다. 그 어린 것 키워낼 길 막막하여 잠시 까마득하기도 한데, 이런저런 아무 대책도 없이 까마득하기만 한데, 그렇다고 손가락만 빨고 살수는 없는 일. 저 또한 그대와 같이 새해를 맞는 일이 각별하기만 합니다. 새해에는 아빠다운 아빠가 되고 싶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새 하얀 어둠이 깊었습니다. 곧 새해가 밝아오겠지요. 이 저녁 폭설 아래에는 푸르게 우거질 나무들이 있고 새벽별 헤치고 나가 달을 이고 들어올 농부가 있고 닳아질 희망도 없던 뒤축 갈아 끼고 출근하는 아버지들이 있고 설레고 벅찬 가슴으로 내일을 여는 젊은이 들이 있고 어른과 아이, 할머니와 할아버지 우리네 어머니들이 뜨겁게 숨쉬고 있습니다.

 

새해에는 모두가 서로의 지친 어깨 토닥이며 새 희망을 향해 한걸음 한걸음 나아갔으면 좋겠습니다. 그대와 나 할 것 없이 모두가 어깨춤 절로 나는 한해가 되길 간절히 바란다는 말로 끝인사를 대신할까합니다. 참말로 좋은 새해 여시 길 바랍니다.

 

-정읍 산내면 장금리에서-

 

박성우시인은 1971년 정읍에서 태어났으며 원광대 문예창작과 박사과정을 수료, 원광대와 우석대에 출강하고 있다. 200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으며 제25회 신동엽창작상 수상했다. 시집으로 『거미』, 『가뜬한 잠』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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