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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무지치 내한공연을 보고…"

이숙경 (전북대학교 음악대학원 재학)

"시가라 하면 쿠바의 코히바 시가가 최고이며, 적포도주라 하면 샤토 라피테 로쉴드를 최고로 꼽을 수 있겠다. 그러나 비발디 사계의 연주라 하면 뭐니뭐니 해도 이 무지치가 연주하는 사계가 최고라고 할 수 있다." -The palm beach post-

 

22일 이 무지치 실내악단 공연 안내지에 쓰여 있던 미국 일간지의 이 글을 마음으로 동감할 수 있었던 멋진 연주회였다. 연주회 내내 내가 느꼈던 이 무지치만의 독자적인 색깔은 바로 '자유'였다. 합주 형태의 앙상블이면 흔히 어느 정도 개성을 양보하고 조심스러운 태도로 접근하려는 경향이 없지 않은데, 50여년 역사의 이 무지치는 12명의 합주 안에서도 개인의 역량을 마음껏 발휘하고 있었다. 이 무지치처럼 지휘자가 없는 리더 체계의 앙상블은 어느 한 사람의 일방적인 음악적 방향 제시가 아닌 모든 단원이 참여하여 개성을 살리면서도 합의를 통한 일치감을 유도할 수 있다. 이런 구조적인 장점이 오늘날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이 무지치를 만드는데 한 몫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모차르트의 유명한 곡 'Eine Kleine Nachtmusik' 으로 문을 연 이 무지치는 이후 여러 가지 레퍼토리로 우리 귀를 호강시켜 주었다. 바로크부터 현대까지 다양한 스타일의 음악에, 사이사이 솔로 주자가 등장하는 곡으로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한시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 특히 파가니니의 '베네치아의 축제'를 연주한 안토니오 안셀미의 연주는 그 뛰어난 테크닉과 기교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비록 자기색이 너무 강해 앙상블의 조화로움이 조금 아쉽긴 했지만 당시 괴짜로 불리던 파가니니의 음악과 연주 스타일을 잘 살린 그야말로 '파가니니스러운' 연주였다. 다섯 번째로 연주된 '항구의 여름'에는 작곡가 피아졸라 특유의 음악적 감각이 잘 나타나 있었다. 엇박자로 오랜 시간 진행되는 악센트, 더블베이스가 악기 통을 때려 박자를 맞추며 활로 줄을 짓이기는 소리까지 음악으로 승화시키는 피아졸라의 독특한 작곡기법에 나는 어디로 튈지 모를 긴장감마저 느껴졌다. 1부 후반부에 연주된 우리의 전래 동요 '우리 집에 왜 왔니?'가 아니었다면 나는 연주회가 끝날 때까지 그대로 얼어있었을지도 모른다. 외국인이 연주하는 우리 전래 동요에 관객들은 반가움을 감출 수 없는 듯 했고 나 역시 그랬다.

 

2부에서 연주된 '사계'는 듣던 대로 굉장했다. 조금 아쉬운 점이 있다면 솔리스트의 미세한 음정 실수나 느린 악장에서 조금 늘어지는듯 한 느낌을 받은 것을 들 수 있겠지만 그것은 '세계 최고의 실내 합주단'으로 평가받는 이 무지치의 발목을 잡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이 무지치는 유명 연주단의 교만함 없이 기립박수를 보내는 우리에게 앙콜곡을 세곡이나 선사해 주었다. 이 무지치의 연주는 전체적인 자유로움 속에서도 확고한 자기 스타일이 있었다. 활을 과장하거나 낭비하는 일이 거의 없었고 그런 군더더기 없는 활 쓰기 만큼이나 연주자들의 자세 또한 담백했다. 다이아몬드 박힌 백금 레코드가 조금도 아깝지 않은 연주자들이었고 이런 연주자들을 전주에서 만나볼 수 있었다는 것에 행복했던 연주회였다.

 

/이숙경 (전북대학교 음악대학원 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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