市 후속대책 마련도 못하면서 수십년 노인쉼터 없애려했나…
"마을 경로당에 가봤자 여자들이 독차지 할 뿐 남자는 한 두명 밖에 없어. 심심해서 싸전다리 밑을 찾은 게 벌써 10년이 넘었어."
완주군 구이면에 사는 안모씨(86)는 매일 오전 10시면 집을 나서 전주남부시장 싸전다리 밑으로 향한다. 이 곳에서 안씨는 10년 연배인 유모씨(95)를 만났고 아들뻘인 김모씨(66)도 알게 됐다. 이들의 공통점은 별반 일거리도 없고 외롭다는 것. 한편에서는 화투판이 벌어지고 술잔이 오가지만 외로움을 매개체로 만난 싸전다리 밑 노인들은 수백명이 뭉쳐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하고 친구를 사귀며 그들만의 '다리 밑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다리 밑에 사람들이 모인 것은 짧게 잡아도 해방 전부터"라는 노인들의 말처럼 이들의 다리 밑 천변 문화는 수십년째 대를 이어 진행되고 있다.
따뜻한 봄 기운을 시샘하듯 바람이 찬 25일 오후 2시, 전주 남부시장 싸전다리 밑 전주천변에는 100여명의 노인들이 군데군데 모여 화투판을 벌이거나 의자 등에 앉아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날이 따뜻해지면서 이달 초부터 다시 다리밑으로 노인들이 모이기 시작한 것이다.
예년과 다른 것은 다리 밑으로 향하는 계단이 철거되고, 이동식 화장실과 수도시설이 사라지고, 다리 밑 공터에는 돌덩이 수십개가 놓인 것이다.
지난해 초 전주시가 도박과 음주, 싸움과 불법영업 등 불건전한 문화로 변질돼가는 싸전 다리 밑을 폐쇄하기 위해 이 같은 조치를 취한 것이다.
이와 함께 전주시는 전주의 한 관문인 싸전다리 밑에서 행해지는 불건전한 행위의 근절을 위해 지난해 말 관련부서들이 모여 싸전다리 밑에 공원 설치 정비 대책을 보고했었다. 또 다리 밑 노인들이 쉴 수 있는 다른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전주시 동서학동에 노인휴게소를 마련하기로 했었다.
그러나 다리 밑으로 향하는 계단만 사라진 채 전주시의 계획들은 현재 지지부진한 것으로 확인됐다. 싸전다리 밑 정비는 남부시장 내 공영주차장 건립이 완료되는 올 연말 이후에나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전주시가 공영주차장 건립 뒤 전주천변 주차장 일부를 폐쇄, 다리 밑 공간과 함께 공원 등으로 정비할 계획이기 때문이다. 노인들의 새로운 쉼터가 될 전주시 동서학동의 작은노인문화공간 역시 올해 안에 건립은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설계도면은 나와 있지만 아직 부지 확보도 돼 있지 않은 상태다.
현재 싸전다리 밑은 계단이 사라져 노인들은 4m 가량의 옹벽에 사다리를 타고 위태하게 내려오다 간혹 부상을 당하고 있다. 또 화장실이 없어 급하면 전주천에 가서 대변과 소변을 해결하고 있다.
안씨는 "임실, 김제, 익산에 사는 노인들도 싸전다리 밑으로 오는 것은 인근에 터미널이 있어 교통이 좋기 때문"이라며 "이 곳을 없애고 다른 곳에 더 좋은 곳을 만든다고 해도 아마 노인들은 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싸전다리 밑으로 향하는 노인들을 막기 위한 여러 편의시설은 철거됐지만 그에 따른 전주시의 후속대책은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여전히 다리 밑은 노인들로 붐비고 있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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