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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窓] 사라진 '개천의 용' - 김경모

김경모(기획취재부 부장)

자본주의의 가장 큰 고민은 재산을 고르게 배분하는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다는데 있다. 사회복지라는 대전제 아래 수많은 분배 장치를 만들어 왔고, 또 만들고 있지만 부의 양극화를 근본적으로 치유하는 명약은 아직은 없는 듯하다.

 

자본주의라는 밑그림 위에 그려진 우리네 공동체도 이런 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빈부의 격차가 날로 깊어가고, 더욱이 이들 현상이 아예 고착화 되는 사례를 주변에서 어렵잖게 찾을 수 있다. 빈자는 대를 이어 가난의 굴레에서 허덕이고, 부자는 대대손손 경제적 풍요를 누리는 사회는 민주주의를 내세운 공동체에선 건강한 시스템도 아니고, 지속 가능한 모델도 아니다.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순환이 막힌 사회는 날이 갈수록 부패하기 마련이다.

 

양극화 현상이 경제에만 그치지 않는다는 게 더욱 큰 문제다. 교육의 양극화도 경제의 양극화를 판박이로 닮아간다. 유치원도 들어가기 전에 한글과 수학을 모두 떼고, 초등학교에선 중학교, 중학교에선 고등학교 과정을 모두 마치는 이른바 고도의 선행학습이 일선 학교에서 극히 정상적인 교육 괘도로 인식되어 가고, 일부 학부모들 사이에선 이게 자식 자랑거리이다. 이도 모자라 모든 수업을 영어로 진행하겠다는 영어 몰입교육을 들먹이는 부류까지 등장했다.

 

하지만 '전인 교육'이라는 화려하게 치장된 교육계의 간판 뒷면을 조금만 들추면 한글을 읽고 쓰지 못할 뿐만 아니라, 기본적인 사칙연산도 처리하지 못하는 중고생들이 숱하게 널려 있다. 도교육청 자료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도 무려 500명을 넘어선다.

 

까막눈 중고생이란 답답한 현실은 이들을 이 지경으로 내박친 사회적 구조로 눈을 돌리게 만든다. 낙오자란 낙인이 찍힌 채 살아가는 이들 학생들을 만나보면 어린 시절 가정이 경제적으로 어려워 선행학습 대열에서 뒤처졌거나, 결손 가정에서 성장하면서 선행학습을 강권할 부모가 없는 사례들이 많다. 또 일부는 선행학습은 정상적인 교육이 아니라는 부모의 '순수한 교육관'에서 비롯된 사례도 있다.

 

이들 아이들은 정식 시합에도 출전하지 못하고 패배자로 분류된 형국이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대부분의 아이들이 한글을 익히고 들어오니, 교사들도 기초 교육을 생략한다. 선행학습이란 쾌도를 타지 못한 아이들이 공교육에 첫발을 내딛으며 느끼는 감정은 좌절감이다.

 

모든 선행학습이 경제 논리와 고리를 맺고 있다. 더 좋은 과외교사를 만나려면 더 많은 돈을 지불해야 하고, 이 대열에 낄 경제력이 없으면 차선책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자치단체들도 이 대열에 끼여들고 있다. 일각에선 부모의 경제력이 아이의 성적과 비례한다는 푸념마저 들린다. 재산의 대물림도 모자라 교육마저 대물림 되는 시대다.

 

빈자가 인생을 역전시키는 가장 대표적인 통로는 교육이었다. '개천에서 용난다'는 속담의 근저엔 교육의 힘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개천에서 용이 나왔다는 소식이 끊겼다. 아예 멸종되었는지도 모른다.

 

개천에서 용이 나올 수 있다는 조그만 믿음만으로도 세인들의 사고의 틀이 바뀔 수 있다. 깜깜한 밤에 밝힌 촛불 하나는 물리학적으로 측정하는 촉광의 수치를 넘어서 우리 모두의 눈길을 모을 수 있는 희망의 등대가 될 수 있다.

 

경제가 모든 부문을 끌고 가는 사회, 특히 교육을 좌지우지하는 상위 개념으로 자리잡은 사회는 건강할 수 없다. 멸종된 개천의 용을 되살리자는 범사회 운동을 벌여보면 어떨까.

 

/김경모(기획취재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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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모 kimkm@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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