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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窓] 자치단체 살림살이 개혁 - 김경모

김경모(기획취재부장)

자치단체들이 살림살이를 운영하는 방식은 품목별예산제와 점증주의로 요약될 수 있다. 대부분 자치단체들이 즐겨 사용하는 품목별예산제는 '장-관-항-세항-세세항-목'이라는 가지치기에 따라 예산을 일목요연하게 나열하는 게 기본 뼈대이다. 즉 어떤 항목에 얼마를 사용하느냐를 일일이 명기하는 방식이다.

 

이 방식은 예산을 집행하는 공무원이 해당 예산을 해당 항목에 적절히 사용했는지를 사전 사후에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고, 행정의 합법성 확보를 최우선 이념으로 만들어진 제도이다.

 

수십년 동안 사용된 이 제도의 이면엔 공무원은 믿을 수 없는 대상이란 생각이 깊숙이 자리잡고 있다. 실제로 감사 때마다 통제 망을 뚫고 부당하게 예산을 전용한 공무원들이 적발되었다는 소식이 심심찮게 전해진다.

 

하지만 이 예산제도의 가장 결정적인 취약점은 투입된 돈이 궁극적 목적에 제대로 쓰였는지를 전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예산서엔 투입만 빼곡이 나열되어 있지, 이들 돈이 사용된 목적과 결과물은 찾기 힘들다. 애당초 투입에 대한 산출을 무시한 제도이다.

 

이같은 틈바구니에서 전년도 예산에 근거한 점증주의가 예산서를 점령하고 있다. 어떤 예산이든지 한번 편성되면 해를 거듭할수록 야금야금 예산을 갉아 먹는다. 투입된 예산에 대한 효과를 알 수 없으니, 증액에 제동을 걸만한 명분도 장치도 없다. 혈세가 어디로 어떻게 흐르는지 방향성과 지향점조차 파악할 수 없는 눈먼 행정을 자초할 가능성이 높다.

 

언제까지 공무원을 통제와 감시의 눈으로만 볼 것인가. 이제 예산제도에 대한 대대적인 혁신이 필요한 시점이다. 시대적 상황과 민의의 성숙도, 공무원의 의식 모두 구더기 무서워 장을 못 담는 시대는 넘었다는 판단이다.

 

전라북도가 예산제도 개혁을 준비하고 있고, 이를 실행에 옮길 계획을 수립한다는 소식이다. 기존의 품목별예산제를 성과관리예산제로 바꾸기 위해 올해부터 연차적으로 정지작업을 거쳐 2011년엔 전면 도입하겠다는 청사진이다.

 

성과관리예산은 투입된 예산에 대한 성과를 측정하고 이를 다음연도 예산에 환류, 효율성이 낮은 예산은 축소하겠다는 게 요체다. 그럴 경우 관례적으로 끼워진 예산은 예산서에서 점차 사라지고, 또 성과를 내지 못한 사업은 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제도 개혁을 마냥 긍정적 시각으로만 바라볼 수 없는 구석도 있다. 우리네 자치단체 예산서엔 정치적 측면이 강하게 스며들어 있다는 것을 부인할 사람은 많지 않다. 특히 단체장 직선제가 실시된 이후 본인과 우호 세력의 정치적 입지를 다지기 위해 주민들의 이익과는 전혀 무관한 곳에 예산이 흘러간 정황은 숱하다.

 

자칫 화려한 탈을 쓴 개혁의 이면을 들추면, 공직자들이 정치인의 입맛에 맞게 성과를 위장하며 짜맞추기 평가에 허덕일 수도 있다는 우려다. 그럴 경우 합법성도 잃고, 효율성도 놓치는 우를 범할 수도 있다.

 

이를 막기 위해선 주민과 그들의 대표인 의회의 감시, 공직자들의 내부 통제 시스템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 제도 개혁엔 적극 찬성하면서도, 왠지 걱정도 그만큼 크다.

 

/김경모(기획취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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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모 kimkm@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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