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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만은 지키자-생태보고서] 완주 경천면 화암사 가는 길

사찰로 통하는 숲의 터널…느리게 사는 법 속삭이다

왼쪽부터 애기나리, 엘레지 군락, 참나리. (desk@jjan.kr)

안도현 시인은 '잘 늙은 절'이라 했던가? 완주군 경천면에 있는 화암사로 가는 길은 시공을 초월한 듯 옛길 그대로다. 아담하고 오래된 절로 가는 마음은 옛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처럼 정겹다.

 

주차장에서 20분 남짓한 짧은 길이지만 그야말로 변화무쌍하다. 갈참나무, 때죽나무 숲이 하늘을 뒤덮은 고즈넉한 오솔길을 지나면 바위 절벽이 몸을 뒤틀어 만든 물길을 따라 길이 이어진다.

 

속세의 인연이 발목을 잡을 수 있으니 뒤돌아보지 말고 가라는 것인지 벼랑 허리에 난 좁은 길을 지나야 한다. 시원한 골바람에 속세의 번잡함을 날려버리고, 마음을 씻으라는 듯 맑은 계류가 흐르는 길의 끝, 벼랑위에 화암사가 있다.

 

화암사로 가는 숲 길. (desk@jjan.kr)

 

▲ 봄부터 가을까지 꽃잔치 열리는 오솔길

 

화암사의 아름다움을 빛나게 하는 것은 바로 이 길이다. 숨겨진 비경과 어울리는 다양한 식물이 분포하기 때문이다.

 

단풍나무, 느티나무, 서나무가 무성한 잎이 터널을 이룬 오솔길 초입은 이른 봄에서 가을까지 꽃 잔치가 벌어진다. 이른 봄, 언 땅을 녹이고 양지바른 곳에서 피는 노란 복수초 군락이 사진작가들의 시선을 끈다.

 

햇볕이 따사로우면 '바람난 처녀처럼 꽃잎을 까뒤집은'이라는 시인의 말이 아니더라도 강수지의 '보랏빛 향기'가 절로 흥얼거려지는 엘레지 군락이 넓게 분포한다. 어린 순은 쌈을 싸먹기도 하는데 많이 먹으면 탈나기 쉽다.

 

귀엽고 앙증맞은 흰 노루귀, 수줍은 듯 얼굴을 붉힌 연분홍의 노루귀, 파랑일까? 보라일까? 드물게 보이는 청노루귀가 눈을 즐겁게 한다.

 

화암사 길에 동행했던 생태문화해설사 유칠선씨(47)는 주위를 둘러보며, 족도리풀, 큰숲개별꽃, 남산제비꽃, 둥근털제비꽃, 도둑놈의 갈고리, 홀아비꽃대, 이삭여뀌에 대해 설명한다.

 

이들이 모여 사는 곳은 겨우 한 평 남짓. 그 너머엔 또 애기나리, 윤판나물, 둥글레, 현호색이 있다. 가을이 되면 또 어떤 꽃이 필까.

 

▲ 죽은 나무, 늙은 나무, 어린 나무가 어울린 숲

 

오솔길은 큰 바위를 칼로 내려쳐 만들어진 작은 계곡으로 이어진다. 물길 바로 윗부분이 사람이 다니는 길이요 짐승이 다니는 길이다.

 

바위를 뒤덮은 축축한 이끼 사이로 바위채송화가 군데군데 자리한다. 뻐꾹 나리도 곱게 펴 있다. 물푸레나무, 서나무, 고로쇠나무, 층층나무, 개옻나무, 갈참나무, 사람주나무, 당단풍나무, 팥배나무, 노간주나무가 서로 어울려 건강한 숲을 이루고 있다.

 

이제 길은 두 갈래, 벼랑 허리에 난 길과 계곡을 타고 오르는 철제 계단, 항시 절벽 길로 올랐다가 철제 계단을 타고 내려온다. 철제계단이 없었으면 하는 맘이지만 다양한 수종을 가까이서 관찰할 수 있는 이점도 있다.

 

나무는 죽어서도 말한다던가. 극상림을 이루고 있는 주변 숲에는 젊은 나무들 사이에서 쓰러 넘어진 고목이 눈에 띈다. 쓰러진 나무는 흰개미를 비롯한 곤충의 먹이가 되고 은신처가 된다.

 

바위를 덮은 이끼와 함께 숲의 습도를 조절하다가 완전히 썩으면 다시 흙을 기름지게 하는 영양분이 된다. 어린나무들이 자랄 수 있는 환경은 이렇게 만들어진다.

 

▲ 근처 신흥계곡엔 뿔나비 군락이

 

산 호랑나비, 팔랑나비, 암먹부전나비, 삼색제비나비 등 숲에서 사는 나비들이 골짜기 사이로 분주히 날아다닌다. 같은 불명산 자락의 신흥계곡은 우리나라 고유종인 뿔나비의 대규모 서식지다. 봄이면 무리를 지어 나는 모습이 장관이다.

 

곤충들이 많아서인지 어른 주먹만 한 두꺼비들이 자주 보인다. 먹잇감도 많고 은신할 만한 바위나 돌 틈이 많기 때문에 가끔 고개를 빳빳하게 쳐든 독사도 만날 수 있다. 여러 사람의 말을 종합해보면 독사는 우화루 입구 철제계단과 옛 절벽 길이 만나는 곳에 주로 나타난다. 독사 자신이 무슨 화암사를 지키는 나한(羅漢)이나 되는 줄 아는 모양이다.

 

▲ 생태학습장 완벽한 조건 갖춰

 

이 골짜기들은 경천저수지에 모였다가 고산천으로 흐른다. 만경강 수계의 최상류인 화암사 일대는 생물종다양성이 높고 양호한 편이다. 자연환경보존지역으로 지정해도 충분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가는 길이 아름답고 식생이 다양하게 분포해 숲을 느끼고 배우는 생태학습장으로 완벽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게다가 깊은 마음의 세계로 향하는 화암사가 있으니 서두르지 않고 느리게 살아가는 법도 깨달을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을 것이다.

 

/이정현(NGO객원기자·환경운동연합 정책실장) ·자문 유칠선(생태문화해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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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현 desk@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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