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모(기획취재부장)
우리 땅 독도를 둘러싼 해묵은 영유권 문제가 최근 한일 양국은 물론 국제사회 외교가의 현안이자 관심사로 다시 떠오르고 있다. 우리 국민들은 오랜 세월 잊힐만하면 불거지는 이 문제에 공분을 쏟아내며 이제는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대비책을 마련하자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하지만 생태학적, 생물학적 시각으로 우리 주변을 살펴보면 또 다른 숱한 '독도'가 우리 주변에 널려있다. 일제 강점기 강압적 품종개량으로 사라질 뻔했던 우리 재래 한우인 '칡소'와 '흑우'. 농촌진흥청 축산과학원은 전국에 300마리만 남은 이들 한우의 정액을 보존하고 수정란 이식기술을 통해 개체수를 늘릴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칡소와 흑우 늘리기 사업은 생물학적 주권 찾기라고 이름 붙일 수 있을 것이다.
시인 정지용의 '향수'에 등장하는 얼룩배기 황소, 동요에 나오는 송아지 송아지 얼룩송아지, 그리고 화가 이중섭 작품 '소' 의 주인공, 이들 모두가 칡소이다. 그런 만큼 칡소와 흑우는 한국인과 함께 한반도에서 긴 세월 살아온 동반자이자 중요한 유전자원이다. 하지만 생물학적으로 어떤 개체가 300마리라는 사실은 이미 멸종이란 벼랑에 서있다는 의미이다.
한국 호랑이는 이미 빼앗긴 '독도'이다. 조선시대 호환(虎患)을 두려워할 정도로 우리네 산하를 누볐던 야생 한국 호랑이는 적어도 남한지역에선 이미 사라졌다. 대신 맥빠진 눈동자의 수입산 호랑이가 삶의 의욕을 잃은 채 동물원 창살을 어슬렁거릴 뿐이다.
한국의 소중한 유전자원을 통째로 외세에 넘겨주는 생물학적 망국 사태가 국민들에겐 별다른 이슈마저 던져주지 못하고 조용히 진행된 적도 있다. 우리나라가 IMF 구제금융으로 국가 전체가 소용돌이에 휘말리는 와중에 외국 자본들이 국내 굴지의 종묘사를 하나 둘 집어삼킨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당시 종묘사가 자체 보유한 식물학적 유전자원은 경제적 계산으로 접근할 수 없는 무한한 가치를 지니고 있었지만, 당시 상황은 이같은 가치를 계산할 여유조차 없었다.
미래의 어느 시점에선 유전자원이 국력의 전면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다양한 유전자원이 다양한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며 국부의 원천이 될 것이란 예상이다.
생명의 근원은 아직도 인류의 과학기술이 전혀 미치지 못하는 미지의 세계에 자리잡고 있다. 최근 들어 유전공학이 급속히 발전하고 있지만, 이는 생명의 비밀을 간직한 유전자를 원천적으로 만들어 내는 생명 창조가 아닌 이미 존재하는 유전자를 조작하는 작업이다. 지구상의 어떤 첨단 기술을 동원해도 하찮은 미물의 유전자도 창조할 순 없다.
한번 사라지면 되살릴 길이 없는 유전자원. 특히 20세기 이후 인간 위주의 개발이 가속도를 더하면서 수백 수천 종의 생물이 멸종 동식물 목록에 하나씩 오르고 있다.
유전자원의 가치에 일찍 눈을 뜬 선진국들은 자국은 물론 외국을 넘나들며 다양성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우리도 서둘지 않으면 지금 우리 주변에 널려있는 유전자원조차 외국에서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수입해야 할 때가 다가올 수도 있다.
유전자원의 보존은 장기적인 프로젝트이고, 국가적인 지원이 필요한 작업이다. 이를 위해선 생명과학 관련 전문기관과 단체들이 대국민 홍보를 통해 사회적인 이슈화에 나서야 한다.
얼룩배기 황소가 정지용 시인의 '향수'에서 걸어 나와 다시금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제2, 제3의 칡소 소식은 물론이다.
/김경모(기획취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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