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적전개·음악결합 적절…판소리 묘미 부족 아쉬워
지난 26일부터 '2008 전주세계소리축제'가 시작됐다. 소리축제 공연 중 가장 주목받을 공연 중 하나가 개막공연 '견훤'이다. 많은 관심 속에서 27일 오후 7시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모악당에서 그 첫 회가 올라갔다. 2000여석의 공연장은 만석은 아니었지만,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객석을 메웠다.
창작창극으로 이번에 초연된 '견훤'은 백제의 부흥을 꿈꾸던 견훤의 꿈이 허무하게 무너지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견훤의 내면적 갈등을 부각시키는 데에 역점을 두었다. 김정수(전주대 교수)가 대본을 쓰고, 오진욱(남원시립국악단 상임연출자)이 연출을 맡았다. 작창은 김영자(전북도립국악원 창극단장)가, 작곡 및 편곡은 류장영(전북도립국악원 관현악단장)이 담당했고, 전북도립국악원 예술단원들이 출연했다.
전체적으로 극적 전개와 음악적 결합이 적절하게 이뤄졌고, 장기간 애써 연습했을 것으로 보여지는 출연진들의 실력도 유감없이 발휘됐다.
그러나 전체적인 극적 분위기는 후백제의 왕으로서 백제의 부흥을 꿈꿨지만 결국 패망하는 과정에서 견훤이 겪은 고뇌와 그의 극적인 삶에 무게감을 두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비장미 일변도로 전개돼 내내 무거웠다. 주제의 특성상 다채로운 방식으로 볼거리와 듣는 재미를 제공하기 어려운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었으리라. 그러다보니 판소리에서 맛볼 수 있는 묘미인 골계미가 발휘되지 못했고, 음악적으로는 계면조 일변도로 흘렀다.
이번 개막공연은 개인적으로 창극의 소재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됐다. 소리축제 개막공연으로 전북지역과 유관한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을 소재로 삼는 것은 물론 큰 의미가 있다. 그러나 창극의 형식으로 무대에서 공연되었을 때 청중에게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도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 이번 작품은 주제성은 좋았지만, 청중들에 대한 배려는 충분하지 않았다고 본다. 이번의 비극적 소재가 갖는 표현방식에서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 문학성에 신경을 좀더 썼더라면 단조로움을 덜 수 있었을 것이다.
판소리사설에서 극적상황이나 인물의 내면심리를 상징적 문체로 묘사한 운문을 소리로 부르는 것에 비해, '견훤'에서의 문체는 너무 평이했다. 소리로 부른 가사 중 적지않은 부분이 아니리로 처리하는 편이 더 맞았을 법했다. 가사 전달에만 지나치게 신경을 썼기 때문이다. 또한 소리보다는 대사가 차지하지 비중이 더 많았고, 대사 처리는 여느 연극 배우들의 그것과 같았다. 호남오페라단이 이번 소리축제에서 선보인 '흥부와 놀부'는 레씨타티브를 판소리의 아니리처럼 처리하는 동시에 표준말이 아닌 전라북도 사투리의 억양을 살린 것과는 대조적이다.
창극에서 중요한 무대장치들도 다소 부족했고, 1막 2장 금산사의 영산작법 장면에서는 타주와 바라춤만 추고 불교의식인 재(齋)에서 당연히 불려지는 범패(梵唄)가 없다거나, 시기적으로 오방처용의 태가 존재하지 않았음에도 처용무를 오방처용으로 춘 것 등 세심한 고증이 부족한 면도 있었다.
많은 어려움이 있겠지만 앞으로도 소리축제 개막공연은 창작창극으로 올리는 것이 여러면에서 의미가 있다고 본다. 창극사에서 길이 남을 작품을 양산하고 그것이 개막공연으로만 끝나지 않고 앙콜공연으로 거듭나기를 희망한다. 그러자면 대본이나 연출 못지않게 재정적 뒷받침이 절대적으로 필요할 것이다. 창극 공연에서 더없이 중요한 무대장치와 세트 등 모든 여건이 개선돼 우리나라 나아가 세계무대에서 영속적으로 공연될 수 있는 작품이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
/임미선(전북대 한국음악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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