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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전주고등재판부와 전북정치권 - 김승환

김승환(전북대교수·법학)

오래 전 독일에 머물던 때의 일이다. 아침 출근시간대에 아내와 아이를 유아원에 데려다 주고 학교로 가는 길에 신호등 앞에서 대기하고 있는데, 느닷없이 차 뒤에서 쾅 하고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뒤를 돌아보니 내 차를 어느 독일인 차가 들이받은 것이다. 차에서 내려 운전석 쪽으로 온 그 사람에게 100% 책임을 인정하느냐고 물은 뒤 평소 휴대하고 다니던 메모장을 주면서 사실관계와 책임을 정확히 적을 것을 요구하자 그는 순순히 적어 주었다. 저녁에 집으로 가서 옆집에 살고 있던 독일인 경제학 교수 바이버(Weiber)에게 이 경우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우리 독일사람들은 무조건 변호사에게 간다"라고 말했다. 순간 우리 한국사람들이 흔히 하던 말이 떠올랐다. "법원은 가지 않을수록 좋다."

 

그렇다. 법원은 우리의 생활현장 가까이에 있으면서 언제든지 우리가 이용할 수 있고 이용해야 할 조직인가 아니면 우리의 삶의 마당 멀리에서 우리를 감시하고 지배하는 권력인가라는 시각의 차이가 우리의 의식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크다. 그러나 우리의 시각이 어떠하든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의 일상이 법원에 의존하는 정도는 계속 높아질 것이라는 것이다.

 

고등법원 전주부가 설치된 이후 그것을 이용해본 사람이라면 우리가 거주하고 있는 지역에 고등재판부가 있고 없고의 차이가 얼마나 큰 것인가를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을 것이다. 노약자나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층이 느끼는 편리함은 더 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인권보장의 보루임을 구두선 외듯 하던 대법원이 고등법원 전주부 허물기에 나섰다. 고등법원 전주부의 명칭 변경과 전속관할권 폐지가 바로 그것이다. 우리 지역에서는 지난 6월 27일 범도민 비상대책위원회가 결성식을 갖고 도민 서명운동에 나섰다. 그 결과 서명운동 시작 3개월도 되지 않아 무려 30만명 이상의 도민이 기꺼이 서명용지에 자신의 소중한 이름을 올려 주었다.

 

그러던 차에 최근 연합뉴스의 보도내용을 접하고서 아연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기사의 골자인즉, 대법원이 수원지법과 인천지법의 상급법원인 경인고법을 설치하기로 하고 옛 서울대 농생대 부지 15만 3천㎡를 무상으로 관리전환해 줄 것을 개획재정부에 요청해 놓고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수원지법을 통해서 확인했다는 것이다. 이에 앞서 7월에는 한나라당 정미경 의원(수원권선)과 원유철 의원(평택갑)이 경기고법을 설치하는 내용의 '각급법원의 설치와 관할구역에 관한 법률 개정법률안'을 국회에 대표발의했다.

 

고등법원 설치 문제를 둘러싸고 전북 주민들은 대법원과 국회를 향해 줄기차게 권리주장을 해 왔던 데 반해, 전북 출신 국회의원들은 거의 나 몰라라 해 왔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전북 출신 국회의원들 중 자진해서 법률안 발의에 대표로 나서겠다는 사람이 없다. 전북 주민들에 비하여 경기 주민들은 고등법원 설치 요구를 거의 하지 않았던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경기 출신 국회의원들은 달랐다. 그들은 지역 주민들의 소송수행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자진해서 발 벗고 나서고 있다. 거기에 대법원이 손을 맞잡아 주고 있는 것이다.

 

전주 전북 지역의 소송사건도 자기지역의 소송사건으로 간주하는 광주 전남 출신 국회의원들, 주민들의 소송편익을 높이기 위해 알아서 법률안 발의에 나서는 경기 출신 국회의원들을 보면서, 전북 출신 국회의원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있다. '의원은 국민의 대표이지만 동시에 지역주민의 대표이기도 하다'(헌법재판소판례집 13권 2집, 520쪽).

 

/김승환(전북대교수·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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