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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문화의 발견] ⑨바이올리니스트 은희천씨

남다른 제자사랑·세상과 화음하는 음악 전도사

▲크로이처 소나타

 

프랑스 누벨바그의 전설 에릭 로메로가 1956년에 만든 영화 '크로이처 소나타'는 톨스토이가 쓴 동명의 소설에서 유래한다. 아내와 불화에 시달리던 만년의 톨스토이가 쓴 이 소설은 당연히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9번 '크로이처 소나타'가 그 연원. 예술은 이렇듯 시공을 넘어 장르 간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우리의 감성을 흔든다.

 

이 바이올린 소나타에는 사랑의 두근거리는 기쁨 뒤에 오는 질투와 흔들림이 들어있지만 거기에는 절제의 미덕이 있다. 바이올리니스트 은희천(59·전주대 교수)이 연주하길 즐겨하는 '크로이처 소나타'는 독주가 아니다. 합주도 아니다. 이중주다. 바이올린의 눈부신 정열과 변주 그리고 상대 피아노가 만들어내는 하모니는 불꽃 튀기는 전쟁이요 때론 애무와 같은 화음을 즐기는 그는 어떤 사람일까, 궁금했다.

 

박력 있게 호소하고 때론 우아하게 감성을 건드는 이 명곡에 호사가들은 톨스토이 소설 탓에 '불륜남녀를 파멸로 치닫게 하는 치명적 음악'이라는 해석을 낳는다. 영화 속 로맨틱한 바이올리니스트를 생각하고 은희천 교수의 연구실을 찾았는데 하얀 눈썹의 그는 점잖은 신사였고 학생들의 멘토 되기를 즐겨하는 교육자였다.

 

▲음악전도사

 

 

그의 프로필을 한 장에 줄이기는 불가능하다. 1981년부터 오래도록 전북을 현의 화음으로 빛낸 '글로리아 스트링 오케스트라'의 리더로서의 그의 활약은 눈부신 바가 있다. 그의 연구실 문을 열자 네 대의 바이올린이 눈에 뜨였다. 그리고 그의 책상 위 메모판에는 공연일정과 해설일정 등 스케줄 표가 빼곡히 붙어 있었다. 그가 얼마나 많은 독주회와 국내외 협연을 소화했다는 것을 바이올린 현이 네 줄이라는 것을 아는 정도면 다 안다. 그는 연주 말고도 음악의 저변확대에 힘쓴다. 왜? 물론 음악이 좋아서다. 그것뿐일까?

 

그는 전북대학교, 전주 MBC 등에서 클래식 감상을 강의하고 진행한다. 한국소리문화전당에서 진행되던 '맛있는 클래식 이야기'는 시내에 가까운 문화정보 114센터 2층으로 옮겼다. 일주일에 사흘을 '민간인'들의 음악 감상 프로그램에 자신의 시간을 할애하는데 프로 연주자에게는 적지 않은 시간이다. '친절한 은교수'가 이토록 음악감상회의 전도사로 나서는 이유는 뭘까.

 

"클래식은 지루하고 어렵다 그러는데, 연주자나 교수들의 책임도 커요. 연주가들의 배려가 부족해요"

 

그는 감상회 프로그램을 클래식 입문에서부터 현대음악과 퓨전음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통해 일반시민들이 '편안하고 즐길 수 있게' 구성한다. 아리아, 관현악, 성악곡 가릴 것 없이 일화 배경 등에 대한 설명과 때론 동영상과 함께 음악 감상하는 시간을 갖는 것.

 

▲음악 저변확대가 곧 제자사랑

 

이 '투자'는 결국 제자사랑으로 이어진다. 어떻게? 음악감상회의 '전도'를 통해 보고 배운 사람들이 결국 음악회의 표를 사는 '관객'들이 된다는 것. 언제까지나 패트런에 의존할 수는 없고 결국은 시민들이 표를 사서 음악을 향유해야 한다는 것이 은교수의 신념이다. 그가 한 술 더 떠 새로운 기획프로그램을 마련했으니 바로 '모닝 콘서트'다. 음반감상을 넘어 실제 연주회를 진행하고 해설까지 도맡는다. 알아야 저변이 늘어난다는 것. 제자들이 귀국연주회를 하면 자발적으로 시민이 나서 입장권을 사는 것이 진정한 축하라는, 은교수의 지론이다.

 

반석위에 올려놓은 글로리아 스트링 오케스트라 리더직을 내어놓은 이 '노선생'은 또 사건을 저지를 계획을 하고 있었다. 바로 민간 교향악단을 출범시키는 것. 전북아트 필하모니 오케스트라를 내년 4월 정식 출항하는데 클래식의 '클라'와 뮤직의 '뮤'를 따서 '클라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로 이름도 지어놓았단다.

 

"첫 연주회에는 지휘자로 금난새 선생을 모셔오기로 했어요. 도지사, 교육감도 만나야하는데…."

 

국내 오케스트라가 다 경영난에 시달리는데 그는 어떻게 운영하려는 걸까?

 

"300만원을 후원하는 운영위원 100명, 그리고 제가 발로 뛰어 기업에 가서 5000만원씩 패트런 몇 팀 하면 운영되지 않겠어요? 오케스트라라면 고정급을 주어야 음악의 완성도가 유지됩니다. 내가 가르친 제자들이 갈 곳이 없는데, 나만 배부르면 됩니까?" 맞다. 청년실업이 예술계라고 예외일 것인가.

 

▲화음(和音), 전주시가 화답할 때

 

음악에서 리듬, 멜로디, 하모니 다 중요하다. 서로 다른 악기가 어우러져 최고의 화음을 이룰 때 연주자와 청중이 하나가 되며 서로 깊은 울림을 자아낸다. 그가 연주하길 즐겨하는 '크로이처'가 그렇고 모차르트의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위한 소나타 A장조'가 그러하다. 모두 쓸만한 피아노맨의 화음이 필수인 음악들. 확실히 그에게서는 연주가의 근엄함 보다는 여럿이 함께 화음을 만드는 음악이 진짜 음악이라는 그의 예술관이 느껴진다.

 

세 시간이 넘는 인터뷰 중 연주 스케줄의 조정과 제자들과의 약속 등 여러 번 휴대폰이 울렸다. 그는 바쁘다. 정신없이 바쁜 그가 미안한 듯, "난 음악부자가 되려는 거야"하며 웃는다.

 

인터뷰 끝내고 악수를 하는데 그의 책상 스케줄 표 옆에 논어 양화(陽貨)편이 붙어 있었다. '신칙인임언 민칙유공 혜칙족이사인(信則人任焉 敏則有功 惠則足以使人)'. 집에 와서 그 뜻을 살펴보았다. '신의가 있으면 사람들이 일을 맡기고, 맡은 일을 명민하게 하면 공적을 세우게 되며, 은혜를 베풀면 사람들이 자연히 협력해 준다.' 그렇다. 전주에서 오래도록 예술혼과 음악저변의 지평을 넓혀온 그에게 이제 전주시와 시민들이 그의 열정에 화답을 보낼 일이다.

 

/신귀백(영화평론가·문화전문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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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귀백 desk@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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