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택(제2사회부장)
"지방을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쪽박마저 깹니까"
지방이 무너지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수도권 규제완화에 따른 후폭풍이다. 지방 사람들의 목소리도 불평과 불만을 넘어 분노와 절규로 치닫고 있다.
그동안 낙후를 면치 못해왔던 지방이 지역경제를 살리고 새로운 성장동력을 창출하기 위해 기업유치에 사활을 걸어왔다. 도로를 새로 깔고 산업단지를 조성하고 특구와 클러스터를 구축하며 기업을 끌어들이기에 안간힘을 써왔다.
사실 지방에서 기업 하나 유치하려면 삼고초려(三顧草廬)로는 어림도 없다. 군산에 현대중공업 공장 하나 유치하는데 도지사와 군산시장이 무려 60차례나 찾아간 끝에 성사됐다.
그만큼 지방에서 큰 기업을 유치하기란 하늘의 별따기보다 힘들다. 수십년간 중앙 정부로부터 소외된 지방은 서울과 경기 인천 등 수도권에 비해 기업 환경과 여건, 경쟁력 면에서 열악하기 그지없다. 그래서 이전 정부에서 지역균형발전을 국정 최대 과제로 내걸고 선택과 집중을 통해 지방 살리기를 추진해왔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에 들어서 수도권 규제완화라는 '쓰나미'로 인해 지역이 초토화위기를 맞고 있다. 자치단체마다 수년씩 공들인 기업유치가 하루 아침에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지난해 말 완공된 익산 왕궁농공단지가 단적인 사례다. 익산시가 미분양사태를 극복하기 위해 기업유치에 발벗고 나선 결과, 3년여 만에 가까스로 농공단지 분양을 완료했다. 국내 농기계관련 업체 16곳이 투자협약을 체결한데 이어 선도업체들이 공장신축에 착수하면서 지역경제에 파란불이 켜지는가 싶었다. 그러나 수도권 규제완화 발표이후 지역민들의 부푼 꿈이 사라지고 있다. 며칠 전 공장이전 및 신축을 추진하던 수도권 업체 2~3곳이 매입 부지를 되팔겠다면서 입주 포기의사를 밝혀왔다.
다른 곳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완주 테크노밸리 정읍 첨단산업단지 익산 지방산업단지 김제 지평선산업단지 고창 골프산업클러스터 익산 보석산업클러스터 장수 말산업클러스터 남원 허브산업클러스터 무주 기업도시 등등.
민간 투자나 기업 유치와 관련된 지방의 대규모 개발프로젝트가 직격탄을 맞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그동안 '선 지방발전, 후 수도권 규제완화'를 누누이 약속해왔다. 하지만 국가경쟁력만을 내세워 이를 헌신짝 내팽개치듯 저버렸다.
더구나 수도권 규제를 푸는 것만이 국가경쟁력을 높이는 첩경인양 논리를 설파하다보니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대립과 갈등만 증폭시켰다. 이 같은 지역 편가르기와 대결구도로 과연 국가경쟁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지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된다.
혹자는 역대 정권에서 호남과 영남으로 편을 가른데 이어 또 다시 수도권과 비수도권으로 대립각을 세워 정치적 이득을 보려는 속셈이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지난 17대 대선결과 처럼 수도권만 확실히 장악하면 영남을 기반으로 한 대선불패, 총선불패 구도를 고착화시키려는 꼼수라는 얘기다. 사실이 아니길 바라지만 국민의 49%가 수도권에 몰려있다 보니 일면 설득력도 있어 보인다.
하지만 지방을 다 죽이고 수도권만 살리는 수도권 집중정책으로는 글로벌 경쟁력을 갖출 수 없다. 유럽 등 선진국은 지금 중앙 집중에서 탈피, 지방분권화로 지방의 경쟁력을 키워 글로벌 경제시대를 선도하고 있다.
지방의 반발이 거세지자 이명박 정부는 뒤늦게 지방발전대책 수립에 부산을 떨고 있지만 사후약방문격이 아닐 수 없다.
수도권 대통령이 아닌 국민의 대통령이라면 통합의 리더십과 함께 백년대계의 안목과 통찰이 필요할 때이다.
/권순택(제2사회부장)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