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천만명 돌파 성과 입소문이 빚은 기적
독립 다큐멘터리 영화 '워낭소리'(감독 이충렬,제작 스튜디오 느림보)가 관객수 100만명의 고지를 코앞에 두고 있다.
2009년 1월15일 개봉한 '워낭소리'는 18일까지 전국 관객 90만명을 모았다. 평일 하루 5만-6만명의 관객이 관람하는 만큼 20일 관객수 100만명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적은 제작비와 개봉관 수 등 독립영화의 열악한 여건을 고려하면 100만명 돌파는 상업영화 1천만명 돌파를 훨씬 뛰어넘는 성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양질의 콘텐츠가 주는 감동'이라는 기본적이면서도 핵심적인 요건을 갖추고 극장에 걸린 '워낭소리'는 입소문을 타고 관객몰이를 시작했고 평소 극장을 잘 찾지 않는 사람들의 발길마저 극장으로 이끌었다.
◇한국 독립영화 첫 '슬리퍼 히트'=경북 봉화의 팔순 농부 부부와 마흔 살 소에 관한 이야기에 처음부터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기울인 것은 아니다. 지난달 15일7개관에서 개봉했을 당시에는 1만명 정도의 평범한 성적을 거두고 잊혀질 영화제용 예술영화 정도의 인상을 줬을 뿐이다.
그러나 결과는 달랐다. 첫 주에만 8천명을 모았고 둘째 주 평일에 상영관 수를 3배로 불렸다. 사람들은 계속 몰렸고 상영관은 매주 20~30개씩 늘어났다. 개봉 20일만에 10만명을 돌파하더니 그로부터 20만명 돌파까지는 일주일도 걸리지 않았고 다시 나흘 만에 2배인 40만명이 됐다. 130개관을 차지한 현재는 '봇물이 터졌다'는 표현이 딱 맞다.
이제까지 상영관 10개 미만으로 작게 개봉한 독립영화는 제작비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통상 1만명을 돌파하면 흥행에 성공했다고 보고, 4만명을 돌파하면 '대박'을 터뜨렸다고 여겨졌다. 그러니 100만명 돌파는 기적적인 일이다. 조용히 개봉해 떠들썩하게 대박을 터뜨리는 '슬리퍼 히트(Sleeper Hit)'를 이룬 첫 한국 독립영화가 된 것이다.
이제까지 국내에서 '슬리퍼 히트'를 친 독립영화는 아일랜드에서 제작된 '원스'로, 상영관 6개로 작게 출발했지만 상영관을 늘리면서 총 22만명을 모았다. 그에 버금가는 성과를 낸 한국 독립영화로는 다큐멘터리 '우리 학교'가 있지만, 상영관 수를 폭발적으로 늘리기보다는 학교나 단체 등 공동체를 대상으로 한 체계적인 순회 상영회의 도움을 받아 10만명을 동원한 경우다.
'워낭소리'는 이 두 영화의 기록을 가뿐히 뛰어넘었다. 순제작비 1억원과 마케팅·배급비용 1억원 등 총제작비 2억원으로 만들어진 이 영화는 관객수 90만명을 기준으로 22억원의 극장 매출(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기준)을 올렸다.
◇중장년층까지 끌어당긴 '우리'의 이야기='워낭소리'가 관객을 울릴 수 있는이유는 바로 우리 부모님 또는 할아버지, 할머니를 닮은 주인공들의 인생과 주인을 결코 배신하지 않는 소의 우직한 발걸음 때문이다.
주인공 최 할아버지는 농기계나 농약을 쓰지 않고 옛날식으로 농사를 짓는 농부이며 그의 곁을 지키는 할머니는 늘 잔소리를 해대지만 사실은 남편을 가장 걱정하는 사람이다. 소는 30년간 그들의 손과 발 역할을 하며 곁을 지켰다.
생의 말년에 있는 이들 셋의 관계를 담담한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삶과 죽음, 이별, 나이듦에 관해 이야기하는 '워낭소리'는 자신의 부모를 되돌아보고 과거를 그리워하게 하는 동시에 대도시의 현대인이 누리지 못하는 순수하고 느린 삶에 대한 동경을 자극한다.
평소에 영화를 자주 보는 젊은이들뿐 아니라 중장년층, 노년층까지도 감동을 받을 만한 보편적인 주제가 먹혀들어간 것이다. 남녀노소 모두 쉽게 이해할 만한 간단명료한 줄거리도 도움이 됐다.
배급사 인디스토리에 따르면 실제로도 영화 관객층이 청소년부터 노년층까지 넓게 분포돼 있으며, 특히 평소 웬만해서는 극장을 찾지 않는 중년층 관객들의 발길이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제까지 독립영화에서 보지 못했던 평일에도 몰리는 관객이 이를 증명한다. '태극기 휘날리며', '실미도', '왕의 남자' 등이 1천만명을 돌파했을 때와 같은 현상이 빚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 영화의 프로듀서인 고영재 PD는 "각박한 세상에 사는 관객은 삶을 천천히 되돌아보고 감동을 받을 수 있는 영화를 바란다"며 "우리를 이 자리까지 오게 해준 농촌과 부모님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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