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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춘자 여사의 귀향-리뷰]막힘 없는 진행방식

아쉬운 언어중심 구조

20세기 유력한 독일어권 극작가인 프리드리이 뒤렌마트의 '노부인의 방문'을 원작으로 한 '마춘자 여사의 귀향'이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연지홀에서 공연되었다. 전통적인 연극 구조인 처음, 중간, 끝을 3막으로 구성함으로써 서사 진행방식에 무리가 없으며, 장면 연결도 무난했다. 특히 언어를 연극의 중심 질료로 삼았고, 갈등의 서사라인에 따라 감정의 집중이 단정하게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비교적 깔끔했지만 다소 단조롭기도 한 무대였다.

 

원작자인 뒤렌마트의 연극적 관심은 사회나 세계보다 한 개인에 밀착되어 있다. 그에게 세계는 개인적 삶의 총체적 방식의 집합개념인 셈이다. 원작에서 크게 이탈되지 않은 이번 공연작 역시 개인적 자아로서 인간의 존재방식에 대한 탐구라 할 수 있다. 쇠락한 도시에 40년 만에 귀향한 거부 마춘자의 출현으로 인해 도시 전체가 술렁거린다. 개인의 출현이 사회의 내적 질서를 교란시킨다는 점에서 마춘자의 귀향은 본격적으로 연극세계를 가동시키는 엔진 역할을 한다. 아울러, 시장과 시민에게 '정의'를 사는 대가로 1조원을 기부하겠다는 마춘자의 제안에 시장과 시민들의 반응 그리고 마춘자와 시민들의 초점인물인 오태균의 대응방식이 일종의 '맥거핀 효과'를 이루면서 연극은 차근차근 오태균의 행동적 귀결점으로 향한다.

 

 

인물을 시야의 중심에 놓고 볼 때, 마춘자, 오태균 그리고 시민들의 캐릭터를 중심으로 연극은 각자 자기욕망의 동선긋기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관객은 인물들의 주어진 상황을 대응해 나가는 방식에 주목할 수밖에 없다. 젊은 날, 오태균이 마춘자에게 가했던 훼손된 사랑과 증인을 매수한 비겁함, 이에 배신감을 안고 그녀는 고향을 떠나버린다. 배신의 칼날을 별러 다시 찾은 고향에서 그녀의 복수, 같은 시민으로 함께 했던 사람들의 오태균에 대한 배신 등 사건의 한복판에는 물질이 자리하고 있다. 오태균이 마춘자를 배신한 것도, 시민들이 오태균의 죽음을 담보로 마춘자의 기부금을 받으려는 것도 따지고 보면, 돈의 위력에서 벗어나지 못한 탓이다. 물질이 없으면 마음도 없다고 했던가. 개인의 엄청난 재력으로 세계의 질서를 지배하려 드는 마춘자나 그런 그녀의 출현이 지독한 가난을 제거할 기회라며 이웃인 오태균을 살인하는 모습 등은 물질 앞에서 가차없이 실종되는 인간의 양심이라고 할 수 있다. 겉으로는 오태균을 위하는 척하지만, 속내는 그를 제거해 기부금을 받고자 하는 존재의 부조리성. 이런 면에서 뒤렌마트는 2차 대전 이후 이오네스코나 베케트보다 한발 앞서 부조리극의 씨앗을 뿌렸다고 할 수 있다. 귀향 모티브를 통해 인간의 부조리한 존재방식을 묻는 공연작은 물질 앞에서 정신은 한없이 왜소해질 수밖에 없음을 말하고 있다.

 

성찰적인 주제를 견고한 구조와 안정감 있는 인물 설정이 효과적으로 뒷받침되어 설득력 있게 공연되었지만 아쉬운 점이 없지 않다. 우선 연극이 반드시 언어 중심으로 전달되어야만 하는가라는 점이다. 21세기 들어 세계연극은 표나게 이미지 중심으로 변화되고 있다. 연극은 보고 듣는 맛이 있어야 한다. 배우들의 절묘하고 심오한 대사는 말할 것도 없고 소리나 음향, 음악 요소 등 청각기호와 배우의 몸짓, 움직임, 표정, 동선 그리고 무대장치의 구성 등 시각기호가 적극적으로 활용되었더라면, 주제가 보다 연극적이고 심도있게 구현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이원희 (극작가·연극평론가 / 한국사이버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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