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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경 전북 기업인] ⑦(주)님프만 서문환 대표

국내 침구업계 특판분야 일인자 손꼽혀..말단직원으로 입사 20년만에 대표 맡아

침구전문업체 ㈜님프만의 서문환 대표이사. 장수 장계출신의 서문환 대표는 빼어난 색소폰 연주실력을 자랑한다. 경기도 남양주시에 위치한 님프만 본사의 대표이사실에도 색소폰 연습장비가 눈에 띈다. 서문환 대표는 직원들이나 거래처 관계자들 앞에서 가끔씩 색소폰 연주실력을 뽐내곤 한다. 그의 연주실력에 취해 '오빠부대'도 상당수 있다는 게 님프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그가 색소폰을 잡은 이유도 남다르다. 침구업체의 특성상 여성들과의 접촉이 잦은 만큼 색소폰을 디딤돌 삼아 사업파트너와의 문턱을 낮추겠다는 것. 이처럼 서문환 대표는 자신의 생각와 행동을 '님프만'에 고정시킨 채 사업확장에 매진하고 있다.

 

올해로 창립 44주년을 맞은 님프만은 전임 회장의 '아름다운 퇴장'으로 이름값을 올리기도 했다. 연매출 평균 100억원에 약 40명의 직원을 보유한 이 업체는 지난 2월 창업자인 김관두 전 회장(75·군산출신)이 물러나면서 자신 소유의 회사주식 전량(12억원 상당)을 직원들에게 무상증여한 것.

 

창업자가 퇴장한 이후 서문환 회장이 회사를 책임지는 대들보가 됐다. 지난 83년 님프만에 말단직원으로 입사한 그는 20년만인 지난 2003년 대표이사에 취임했다. 그의 성장은 곧 '님프만의 성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는 입사이후 침구업체로는 국내 처음으로 특판분야를 개척하고, 님프만을 국내에서 손꼽히는 침구업체로 키운 주인공이다.

 

'님의 품안에'의 약자인 님프만 브랜드를 만드는 데도 그의 역할이 컸다.

 

"지난 1993년 대전엑스포때였어요. 엑스포측이 8t트럭 100대 분량의 침구류를 발주했는데, 당시 업계에서는 '엑스포에 납품하는 업체는 부도가 날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죠. 우리가 보란듯이 납품을 마무리했고, 이를 계기로 님프만이 국내 침구업계 특판의 대명사가 됐어요"

 

그는 엑스포 납품외에도 군납에도 매진해 군인들의 담요를 천이불로 교체하는 개가를 올렸다. 님프만의 특판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과 강원지역의 연수원·대형숙박시설 등에 잇따라 천이불을 대량납품하면서 사세를 키웠다.

 

창업자가 혈육도 아닌 그를 후계자로 낙점한 것도 특유의 성실함과 뚝심을 높이 샀기 때문이라는 게 회사측의 귀띔.

 

서문환 대표는 "군에 '군인들의 침구류를 천이불로 바꾸자'는 제안을 했고 이후 2~3년동안 계룡대에 살다시피 했다"면서 "뭔가를 간절히 바라면 이뤄진다는 생각으로 매출규모를 넓혀갔다"고 말했다.

 

그는 "몇년안에 우리회사 최고매출(180억원)을 경신하는게 일차목표"라면서 "이를 위해 온라인유통과 영업망을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금도 수시로 고향을 찾아 고향 친구들과 밤을 새워 이야기꽃을 피운다는 서문환 대표는 "고향에서 올라온 뒤 그동안 앞만 보고 살았다"면서 "전북사람이라는 생각을 앞세우지 않았다면 무수하게 힘들었던 고비를 넘기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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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우 epicure@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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