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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전주국제영화제] ②역대 프로그래머 검색

영화제 성격·방향설정, 상영작 선택 등 기획 전담

왼쪽부터 1회 김소영씨·정성일씨, 2~3회 서동진씨, 4~5회 김은희씨, 4회~현재 정수완씨, 6회~현재 유운성씨, 9회~현재 조지훈씨. (desk@jjan.kr)

프로그래머는 영화제 성격에 맞게 방향을 설정하고, 상영할 영화를 선택하는 등 영화제의 전반을 기획하는 일을 한다.

 

영화제 규모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보통 한 영화제에서 활동하는 프로그래머는 2∼4명 정도. 국제영화제 경우 세계 영화 흐름을 파악하고 작품 보는 눈을 키우기 위해 프로그래머들은 평소에도 세계의 영화제를 다니며 영화를 보고 감독, 배우, 제작자 등과의 인맥을 형성해 나간다. 2005년 6회 영화제부터 전주영화제의 프로그래밍을 맡고 있는 정수완 수석 프로그래머는 "영화제 준비란 원래 육체적으로 아주 힘든 작업"이라며, "베를린은 가봤어도 호텔하고 극장밖에 모른다"는 말로 다른 영화제에 출장을 가더라도 영화 보기 바쁜 프로그래머의 처지를 설명했다.

 

보통 200편 안팎을 상영해 온 전주영화제 경우 출품작만 해도 1000편이 훌쩍 넘는다. 프로그래머들은 출품작들을 일별해야 하는 것은 물론, 평소 눈여겨 봐왔던 감독이나 작품, 그 해 영화제를 앞두고 사회적 이슈나 분위기와 맞아떨어지는 작품 등도 확보해야 한다.

 

결국 프로그래머가 상영작을 선택하기 때문에 프로그래머의 성향이 곧 영화제의 성격이라고 할 수 있지만, 실제로 영화제에 프로그래머로 참여하게 되면 영화에 대한 혹은 영화제에 대한 자기 철학이나 생각 등을 지켜나가기가 쉽지 않다. 해마다 관객들로부터 평가를 받아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 대부분 자치단체들이 국제영화제를 개최하고 있는 우리나라 상황에서 행정의 눈치도 봐야하기 때문이다.

 

전주는 깐느도 아니었고, 부산도 아니었다. 때문에 전주국제영화제가 첫 회를 준비할 때 가장 큰 문제는 역시 프로그래밍이었다.

 

상영작은 영화제의 중요한 경쟁력이 된다. 영화제는 결국 양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좋은 영화를 프로그램에 포함시키느냐, 즉 질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특히 프리미어 상영은 그 영화제의 위상과 관련된 문제로, 프로그래머로서도 양보할 수 없는 자존심 문제다.

 

1회 프로그래머였던 정성일씨는 "이제 막 시작하는 전주영화제가 최고 감독들의 디지털 영화를 최초 상영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으며, 더군다나 부산국제영화제보다 먼저 상영하는 것도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렇다고 부산에서 상영한 목록을 들고 와서 재상영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회고한 적이 있다.

 

전주영화제 프로그래머는 1회 김소영 정성일 → 2∼3회 서동진 → 4∼5회 정수완 김은희 → 6∼7회 정수완 유운성 → 8∼9회 정수완 유운성 조지훈으로 변화해 왔다.

 

1회 영화제를 치른 김소영 정성일 프로그래머는 지역 안팎으로 영화에 대한 인식이 충분하지 않던 시기, '대안' '독립' '디지털'로 전주영화제의 성격을 확고하게 다져놓았다.

 

정성일 프로그래머가 쓴 '디지털 삼인삼색' 최초 기획서 형식인 '전주국제영화제 디지털 3인3색'이란 글에서는 초창기 프로그래머들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

 

"나와 김소영씨는 전주국제영화제가 무엇보다도 미래지향적인 프로그램을 생각하는 영화제가 되기를 희망했다. 그것은 이 영화제는 전주에서 하는 영화제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영화제가 갖는 컨셉이 그 지역에 대한 이미지, 그 지역이 지닌 고유한 정체성, 그리고 그 지역이 만들어내는 문화적 아우라와 영화제 사이에서 어떤 긍정적인 만남의 울림이 있을 때 왜 이 영화제가 전주여야 하는가, 라는 질문에 대답할 수 있을 것으로 믿었다". 두 프로그래머가 전주영화제를 맡기로 하고 가장 먼저 한 일은 전주에서 매년 열리는 문화행사들을 파악하는 것이었는데, 그들은 전주라는 전통적인 도시와 영화의 가장 진보적인 측면이 서로 긍정적으로 부딪치면서 즐거운 함성을 내기로 소망했다.

 

정성일 프로그래머는 "부산이 아시아의 영화제가 되기를 소망하고, 부천이 주류 바깥으로서 마이너한 컬트 파티를 지향할 때, 전주는 디지털이라는 화두를 안고 미래 시제로서의 영화를 이 전통적 문화를 소중하게 사랑하는 고도에서 함께 생각해 보자는 제안을 할 때, 그것은 한국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세번째 영화제로서 자기 정체성을 주장할 만한 충분한 이론적-미학적-역사적-지역적 근거가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고 적고있다. 결과적으로 두 프로그래머는 전주와의 연을 끊게 됐지만, 전주영화제 정체성의 기초를 분명히 했다.

 

2회 영화제를 앞두고 두 프로그래머가 돌연 사퇴하면서 서동진 프로그래머는 안해룡, 앙트완 코플라와 함께 프로그램 어드바이저로 긴급투입된다. 프로그램 어드바이저를 제안받았을 때 이들은 대강의 상영작이 이미 확정된 상태고 일부만 선정하면 될 줄 알았지만, 정작 인수인계를 받고 보니 상영작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서동진 프로그래머는 당시 인터뷰에서 "지극히 제한적인 시간과 자원 속에서 영화를 선정했다. 이런 상황에서 큰 틀의 변화는 시도조차 생각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오락적이고 다분히 관습적인 영화보다는 생소하고 낯선 영화들에 여전히 비중을 두었다"고 말했다.

 

3회때 정식으로 프로그래머를 맡게된 서 프로그래머는 최근 전북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당시 전주영화제는 신생 영화제로서 널리 알려져 있지 않은 상태라서 이미 자리를 잡은 부산과 부천에 비해 작품 초청에 있어 어려움이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또한 영화제가 흥행은 물론, 지역 발전에 기여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당장 그 결과를 산출해 내기에는 시간이 필요했다고. 그는 "특히 전주영화제 관객은 마니아층으로, 소득계층이라고는 할 수 없어 티켓 수익을 기대하기 보다는 문화적 효과 측면에서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2003년 4회 영화제부터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3회까지 조직위원회 단일체제로 운영되던 것을 효율적인 운영과 영화제 전문성을 위해 조직위와 집행위로 분리했다. 민병록 집행위원장이 선임됐으며, 정수완 김은희 프로그래머도 이 때 전주영화제와 결합했다.

 

민병록-정수완-김은희 체제는 '영화 마니아만을 위한 영화제'라는 지적을 적극 수용했다. 그동안 실험성 강한 작품들에 무게를 실었던 전주영화제는 '보편성을 토대로 감독과 관객들이 소통할 수 있는 대중성'에도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으며, 일본에서 공부한 정수완 프로그래머는 아시아와 한국영화로, 프랑스에서 공부한 김은희 프로그래머는 유럽과 미주대륙 영화로 역할도 분담했다.

 

두 프로그래머는 4회와 5회 영화제를 치르며 "주류와 비주류의 경계를 허물고 넓은 의미의 실험적 시도를 하는 영화의 다양한 진보적 흐름을 반영하고자 했다"며 "영화가 주는 즐거움과 영화를 즐기는 새로운 방식을 발견하는 영화제에 초점을 뒀다"고 밝힌 바 있다. 실제로 5회 영화제를 방문했던 많은 영화전문기자들은 "집행부가 바뀌면서 디지털을 강화했던 1회에 비해 회화적인 영화들과 실험적인 영화들이 더 많아진 느낌"이라고 말했다.

 

6회때는 김은희 프로그래머가 하차하고 영화평론가 유운성 프로그래머가 합류했다. 전주 출신인 유운성 프로그래머는 2002년부터 '한국 단편의 선택' 비평가위원회에서 활동하며 전주영화제 안에서 지속적으로 일해 왔다. 정수완 프로그래머가 영상원에서 강의할 때 교수와 학생 사이로 시작된 이들의 인연은 동료로 발전했으며, 이들의 호흡은 '마니아'와 '대중성' 사이에서의 균형을 제법 잘 맞춰나가고 있다. 두 프로그래머는 "대중성있는 영화의 비중이 많아졌다는 의미가 상업영화를 가져왔다는 것은 분명 아니다"며 "항상 창조적이고 실험적이었던 전주영화제의 '자유, 독립, 소통'을 지켜나가면서, 그 안에서 비교적 낯설지 않은 영화들을 선택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유 프로그래머는 프로그래머를 맡았던 첫 해, "비평가주간에서 한국단편만 선정해 왔는데 나에게 주어진 영역이 국내외 장단편으로 넓어져 스스로 선별기준을 엄격하게 하려고 했다"며 "미학적으로 기본을 갖춘 영화를 우선 선택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한 바 있다. 그의 별명은 '걸어다니는 영화사전'. 상영작 선정과정에서 유 프로그래머의 박식한 지식이 유감없이 발휘되는 가운데 특히 '영화보다 낯선' 섹션이나 '회고전' 선정에 그의 목소리가 높다.

 

8회때 정수완 프로그래머는 수석 프로그래머가 된다. 또한 유운성 프로그래머와 함께 일할 프로그래머로 조지훈 프로그램팀장이 전격발탁된다. 조 프로그래머는 당시 인터뷰에서 "2년 동안은 훈련과정이라고 생각한다"며 "10회 정도에는 독립적인 프로그래머로 활동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고, 10회를 맞는 올해 조 프로그래머에 대한 기대가 높다.

 

수석 프로그래머는 영화제 프로그램 전체의 균형과 색깔을 정하는 역할. 상영편수 등 전주영화제의 규모를 생각한다면 수석 프로그래머 제도는 다른 영화제에 비해 상대적으로 늦게 도입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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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원 leesw@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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