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기 간 질환의 최종 치료법
지난 6월 말, B형 간염과 간경화로 고통 받던 한 환자가 새 삶을 찾았다. 약간의 언어 장애를 가졌지만 성실하게 살며 가족을 돌보던 한 가장이 불의의 사고로 뇌사에 빠진 뒤 장기기증을 했고, 만성 간질환을 가진 이 환자가 간 이식 수술을 받게 된 것이다. 이 환자에게 간 이식은 치료를 위한 최후의 수단이었다. 뇌사자와 그 가족의 숭고한 결정은 이처럼 생면부지(生面不知)의 만성 질환자들에게 마지막 희망의 끈이 되곤 한다.
위에 예를 든 환자에게 건강을 찾아 준 '간이식 수술'은 말기 간질환의 최종 치료법으로 정립되고 있다. 만성 간질환으로 고생하는 환자들 중에서 내과적·외과적 치료법으로도 호전 되지 않고 불가역적으로 진행되어, 예상 생존 기간이 1년 미만인 분들이 통상 간이식의 대상이 된다. 간 이식 수술 대상 질환은 성인에서는 여러 가지 원인의 간경화(원발성/속발성, 담즙성, 알코올성, 바이러스성), 원격전이가 없는 원발성 간암, 경화성 담관염 등이 있고, 소아에서는 담도 폐쇄증과 대사성질환 등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간암을 비롯한 급·만성 간질환의 가장 흔한 원인이 B형 간염이며, 그 밖에 C형 간염, 알코올성 간염, 답즙 정체성 간염이 있다. 1980년대에는 B형 간염바이러스에 의한 질환은 이식 후 재발과 이에 따른 높은 사망률 때문에 간 이식 수술을 회피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 B형 간염 면역 글로불린과 항바이러스제제 등 바이러스를 제압하는 약물이 실용화 돼 재감염이 획기적으로 감소하면서 B형 간염으로 인한 간염, 간경화뿐만 아니라 간암의 치료로도 간 이식 수술이 적극적으로 시행되고 있다.
간이식은 크게 뇌사자의 간을 기증받아 시행하는 뇌사자 간이식과 가족 간 또는 친척 간에 이루어지는 생체간이식으로 나눌 수 있다. 정이 많은 우리 국민의 특성상 가족 중에 환자가 발생하면 주위 가족들이 기꺼이 장기를 제공하는 경우가 많아서 생체 간이식이 전체 간이식의 85%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뇌사자 간이식이 주를 이루는 구미 국가와 대조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생체 간이식은 세계적인 수준을 자랑하고 있다. 2000년부터 시행된 장기매매 금지 법률이 역기능을 나타내면서 뇌사자 장기이식이 현저히 위축되는 현상이 나타났고 이로 인해 생체이식이 대안이 되었다. 생체 간이식에 관한 한 세계적으로 유래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급속히 발전했다. 최근에는 생체간이식을 배우기 위해 일본으로 향하던 각국 이식외과 의사들의 발길이 이제는 한국으로 돌려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이다.
전북대학교병원을 비롯한 전북지역의 이식 수술도 전국적으로 높은 수준을 자랑하고 있다. 전북대병원에서만 37건의 간이식과 272건의 신장이식이 성공적으로 이뤄졌다. 특히 전국 인구 대비 3%에 불과한 전라북도에 있는 전북대병원이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뇌사자의 10%를 관리한 바 있고, 올해는 지난해보다 더 높은 실적을 내고 있다. 법률 상 뇌사 장기기증이 발생한 병원에 우선권이 주어지기 때문에 전북대병원 장기 이식 대기자가 타 지역 대기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유리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급·만성 간질환으로 고생하는 환자의 삶에 비하면 간이식 후 삶의 질은 비교할 수 없이 훌륭하다. 그러나 간 이식을 받은 환자가 면역억제제를 평생 복용해야 하고 병의 원인이 되는 바이러스를 제압하기 위해서 주기적으로 주사를 맞아야 하는 등 간이식은 치료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는 것도 꼭 기억해야 한다.
/조백환 교수(전북대병원 간담췌·이식외과)
▲조백환 교수는
전남대 의과대학 졸업
전북대 대학원 의학과 석사학위
전남대 대학원 의학과 박사학위
대한이식학회 상임이사, 전북대학교병원 진료처장 역임
전북지역암센터 소장 역임
현재 한국정맥경장영양학회 회장, 국립암센터 제7기 암정복추진기획단 추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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