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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의 문화콘텐츠 50] ⑭고문서

역사 재구성 하는 실마리…보조자료 넘어 유물 자체로의 가치

박물관에서 고문서는 전용 수장대에 보관된다. 이 때 수장대 안에 지류 전용 소독약품을 함께 넣어 훼손을 대비한다. (desk@jjan.kr)

선사시대의 암각화에서부터 조선시대의 의궤에 이르기까지 옛 사람의 '기록'은 상상을 초월한다. 대한민국 기록의 역사를 거론할 때, 반드시 빠뜨리지 말아야 할 곳이 바로 '전라북도'. 임진왜란 중 「조선왕조실록」을 온전하게 보존한 지킴이였고, 전라감영에서는 60여종의 책을 발간했으며, 「열녀춘향소설가」와 같은 수많은 완판본 고소설을 발행했던 지역이라는 역사가 그 이유를 대변한다. 더불어 한 시대의 정치에서부터 사회, 경제, 문화 등 삶의 모든 것이 담겨져 있는 '고문서'(古文書)가 곳곳에 산재해 있다. 이런 차원에서 고문서는 '로또'다.

 

▲ 작성 당시의 생생한 삶 기록

 

고문서란 우리 조상들이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과정에서 작성하여 사용하던 각종 문서를 말한다. 임명장인 교지(敎旨), 편지인 간찰(簡札), 주민등록등본인 준호구(準戶口), 매매계약서인 명문(明文), 과거시험 답안지인 과지(科紙,) 각종 소송사건 및 여론 형성을 위한 소지(所志)와 통문(通文)이라 불리는 것들이 그것.

 

우리는 그간 「삼국사기」나 「고려사」, 「조선왕조실록」을 1차 사료라고 배워왔다. 그러나 고려사나 조선왕조실록은 사관(史觀)이 사료를 취사선택하여 만든 산물이기 때문에 엄밀히 말해서 이들 자료는 1차 사료가 아니다.

 

반면 고문서는 역사자료로 남기기 위해 작성된 것이 아니라, 작성 당시 '문서' 그 자체로서 만들어진 것이어서, 어떠한 자료보다 작성당시의 생생한 모습을 담고 있다. 각 호(戶)의 호구상황을 자세히 기록하여 관에 제출하는 문서(호구단자), 과거시험 응시자가 작성하여 제출한 답안지(과지), 억울하거나 원통한 일이 있을 때 이를 해결해 줄 것을 호소하면서 관부에 올린 문서(원정), 논 밭 임야 등을 매매하면서 작성한 문서(명문)들은 직접적인 행위 혹은 사실의 1차적인 모습을 보여 준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고문서 자료들은 역사적인 사건과 연계되어 새로운 사실을 밝히거나 기존의 사실을 증명해 줄 때, 반대로 그것이 거짓임을 드러내어 기존 사실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한다.

 

▲ 고문서, 전북을 말하다

 

고문서는 대부분이 유일한 자료이기 때문에 한번 망실되면 다시는 복원되지 않는다. 따라서 그것이 가지는 의미나 성격의 우열에 관계없이 모아질 필요가 있다. 전국의 여러 연구기관들이 고문서를 집성하는 작업에 목을 매는 까닭도 실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최근 전북지역에서도 '지방사 자료의 확보' 라는 차원에서 고문서를 수집, 정리하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현재까지 파악된 전북지역 고문서의 수량은 3만 여점. 여기에 아직 조사되지 않은 고문서의 수량을 더한다면 훨씬 증가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 고문서를 활용한 자료집 간행 및 전시회도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약 2만여점의 고문서를 보유하고 있는 전북대박물관에서는 무장에 거주하는 함양오씨의 고문서와 남원 둔덕방의 전주이씨 고문서를 기증 받은 뒤에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연구서를 발간하였으며, 특히 소유하고 있는 고문서를 유형별로 정리한 「박물관도록(고문서)」(1999)을 발간하여 고문서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데 일조하였다.

 

또한 전북향토문화연구회에서는 무민공 황진가 고문서, 전주이씨 고림군파 종중문서, 설씨부인 권선문첩 등 전북지역 내 문화재로 지정된 고문서를 번역한 자료집을 내놓았다. 이밖에도 전북대 전라문화연구소에서는 고문서 수집을 위한 학술대회 및 연구서를 발간하고 있다.

 

고문서를 수집하고 이를 정리하여 사회사나 생활사 연구 자료집으로 간행하려는 노력은 박물관에도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 그리하여 국립전주박물관에서는 고문서를 다른 유물의 보조자료가 아닌 하나의 유물로 인정하여 국립박물관 최초로 1993년에 전시회를 개최하고 「조선시대 고문서」라는 도록을 발간하였다. 또한 2003년에는 시기적으로 아주 짧아 성격이 애매했기 때문에 소홀이 취급하여 온 대한제국시기의 고문서에 관심을 가지고 일제강점기의 문서양식을 살펴보는 특별전을 개최하였다. 뿐만 아니라 지난 2007년 전주역사박물관에서는 효령대군의 후손들인 칠산군파 종중 고문서를 기증·기탁 받아 조선시대 한 양반가의 삶을 재구성하는 전시회를 개최하여 세인들의 많은 관심을 받았다.

 

▲ 기록의 한계 넘어 콘텐츠로

 

고문서를 포함한 전북인의 기록문화전통은 일본강점기와 해방 후의 혼란기를 거치면서 점차 무너졌다. 그릇된 역사관으로 인한 우리 역사와 문화에 대한 피해의식은 그러한 기록문화의 전통이 있는 것조차 모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다행히 전북대학교 박물관에서 고문서의 사료적인 가치를 높이기 위한 작업을 진행해 호남지역에 현존하고 있는 고문서 1만7788점의 원문이미지 데이터와 각 고문서별 서지사항 및 해제를 구축해 놓았다.(www.honam.chonbuk.ac.kr) 이로써 전문가는 물론 고문서에 익숙하지 않은 일반인들이 고문서에 대한 접근과 이해를 도모하고 있다. 여기에 더 나아가 전라문화연구소는 현재 호남기록문화시스템에 탑재되어 있는 고문서를 이용해 호남지역의 인물정보, 역사지리, 인구통계, 물가정보, 생활문화 분야 등의 콘텐츠를 구성, 서비스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로써 기록문화유산으로서 고문서의 가치를 일깨우는 중요한 첫 발걸음이 될 것이며 전북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재구성하는 단초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학중앙연구원, 규장각, 한국국학진흥원 등 다른 지역에서도 고문서를 단순히 가공하고 홍보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이를 적극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가고 있다.

 

우리 전라북도도 어느 정도 기반은 조성된 셈이다. 이제는 고문서를 제대로 이해하고 다룰 수 있는 전문연구인력 양성에서부터 활용을 위한 콘텐츠 구상까지 조직적이며 체계적인 마스터플랜이 필요하다. 이에 따른 제도적인 보완장치도 필요함은 물론이다. 이런 구상 하에 실천에 옮긴다면 고문서를 활용한 새로운 지평을 넓히는 역할도 할 수 있을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최우중 문화전문객원기자(전주역사박물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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