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지정문화재 1호 박갑근 선생 전수 강매실씨과 양기호씨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1호 보유자였던 박갑근 선생의 빈 자리로 맥이 끊어지다시피 했던 익산목발노래가 다시 일어선다.
익산 지방에서만 전해오는 목발노래는 지게 목발에다 작대기 장단을 치면서 자진 노래 장단에 자진 춤을 추는 노동요. 8kg 정도 나가는 지게를 지고 한 판을 다 돌고나면 젊은 사람도 지쳐 숨이 차오르지만, 흰 바지저고리를 입고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는 이들의 모습은 백의민족의 소박한 삶을 떠올리게 한다.
익산목발노래는 자신이 살던 익산시 삼기면을 중심으로 농요를 발굴하던 박갑근 선생에 의해 체계적으로 정리됐다. '제12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1970)에 익산농요로 출전해 전라북도지사상을 수상하고 '제13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1972)에서 익산목발노래로 문화공보부장관상을 수상하며 그 가치를 인정받기 시작했다. 1984년 박갑근 선생이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1호 익산목발노래 보유자로 지정받았지만 전수장학생이 자주 바뀌고 이수자를 제대로 배출해 내지 못한 상황에서 2005년 선생이 세상을 떠나면서 문화재 지정도 해지됐다.
새타령, 육자백이, 자진육자백이, 흥타령, 등짐노래, 목발노래(일명 '콩꺾자'), 작대기타령, 둥당게타령(일명 '꿩타령'), 상사소리로 이어지는 목발노래 전 바탕을 물려받은 사람도 강매실씨과 양기호씨 뿐. 원래 판소리를 했던 강씨는 전수장학생 기간을 다 채우지 못해 이수자가 되지 못했지만 소리를 잘 한다는 소문에 박갑근 선생이 삼고초려해 데려온 제자다. 양씨는 25년간 박갑근 선생을 따라다녀 그 누구보다 목발노래에 대한 애정이 깊다.
목발노래보존회를 재정비하면서 어느새 여든이 넘은 초창기 회원들은 고문으로 물러났으며 강씨가 회장을, 양씨가 부회장을 맡기로 했다. 삼기, 웅포, 함라 등 주민 50여명이 보존회에 새롭게 합류했고, 지난 4월부터는 본격적으로 연습을 시작했다. 다행히 소품으로 쓰던 지게나 삿갓, 절구, 소가죽, 꿩 등은 창고에 남아있었다.
보존회를 새롭게 꾸린 이상 이들의 목표는 문화재 재지정. 그러나 더 큰 뜻은 농경문화가 사라지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에 목발노래를 농경문화의 꽃으로 피워보는 데 있다. 강씨는 "세대 교체가 이뤄지면서 아직 숙련되지 않은 회원들이 있지만, 최대한 원형에 가깝게 복원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양씨는 "당초 전주세계소리축제에서 공연을 하기로 예정돼 있었는데 축제가 취소되면서 시연 기회가 사라졌다"며 많은 사람들에게 익산목발노래를 보여줄 수 있는 자리를 알아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