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져가는 공간에 생명을 불어넣는 작업"…정미소·이발소 등 담아
고향 들녘의 모든 길이 정미소로 이어진 때가 있었다.
추석과 같은 명절이 오기라도 하면, 어린 시절 누군가의 치마꼬리 붙들고 따라가서 기웃댔던 정미소. 언제나 '애껴야' 했기에 배고팠던 시절, 정미소는 유일하게 풍요로운 곳이었다.
사진작가 김지연씨(61·공동체박물관계남정미소 대표)는 얼굴 없는 사진작가다. 김지연이라는 이름은 몰라도, '정미소 사진작가' 하면 아는 이들이 여럿된다.
26일 오전 9시30분 그의 개인전 '봄날은 간다'가 열리고 있는 갤러리 봄에서 그를 만났다.
"가수 조영남씨에게 '왜 가수 하셨어요' 라고 물으니까, '그냥요'라고 대답하는 걸 봤어요. 저도 마찬가지예요. 그냥 좋아서요."
뒤늦게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대학 시절 연극도 조금, 그림도 조금, 이것저것 기웃대긴 했지만, 사진은 의외의 작업일 수도 있다.
"어떤 예술이건 간에 느닷없이 표출되는 감성은 없어요. 다양한 훈련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이거야' 하고 나타나는 거죠."
아무리 아름다운 풍광도 '판박이'로 똑같이 그려내는 것은 큰 매력을 느끼지 못했던 그였기에 '운명' 직전의 것들에 다시 '숨'을 불어넣는 작업을 시작했다. 특히 어렸을 적 쌀이 좔좔 흘러넘치는 정미소는 보기만 해도 배불렀던 공간. 불과 몇 년 사이 폐가로 변해 꿔다놓은 보릿자루 취급 당하는 꼴을 참을 수가 없었다.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그는 7∼8년간 주구장창 정미소만 찍으러 다녔다. 발품 팔아 담은 곳이 500여곳. 녹슨 양철지붕 색감을 잡아내기 위해 흐릿한 날만 고르느라 올려다본 하늘만 수천번, 찌푸린 하늘의 표정을 읽는데 '달인' 에 가깝다.
하지만 2000년 서울 룩스갤러리에서 연 첫 개인전 '정미소 사진전' 반응은 싸늘했다. 그로부터 2년 뒤 서울시립미술관 다큐멘터리 사진작가로 참여해 내건 정미소 사진은 기대 이상이었다. '색감이 좋다' '향수를 불러 일으킨다' 등 이사 때 천덕꾸러기가 됐던 사진집이 동이 났을 정도.
2004년 그는 또다시 일을 저질렀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진안에 문 닫을 뻔한 정미소를 사서, 공동체박물관계남정미소를 꾸린 것. 정미소는 마을공동체 구심점 역할을 하던 곳이기도 했으니, 모두의 경험과 기억을 나누는 공간으로 지켜가고 싶다는 게 속뜻이다.
"어려움이요? 경제적인 문제죠. 언제까지 버틸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과 매일매일 싸우고 있습니다."
온갖 세월을 견디고 또 건너온 이발소, 이장님 등 그의 앵글 중심엔 늘 뜨겁게 마음과 마음이 오가는 것들이 중심에 있다.
이번 전시는 삶과 죽음의 통성명. 영정 사진 속 어르신과 평생 매어 살아온 주민등록증의 관계 맺음, 삶과 죽음의 의미를 떠올리게 하는 전시다. 누구의 '아제', 누구의 '아짐'할 것 없이 사진속 어르신들의 과묵한 얼굴엔 나고 자라고 혼인하고 자식낳고 여의고 늙어간 다양한 표정이 읽혀진다.
고요한 수런거림처럼 그와의 만남, 전시의 여운은 그렇게 길었다. www.jungmis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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