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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혁의 글씨로 만나는 옛 글] ⑩구양순(歐陽詢)의 '구성궁예천명(九成宮醴泉銘)'

치열한 공부 끝에 얻은 '절제된 운필' 아름다움 선사

구양순 서 '구성궁예천명' (desk@jjan.kr)

구양순(557~641)은 자가 신본(信本)이며 담주(潭州, 호남성) 사람이다. 아버지 흘(紇)은 진(陳)에서 광주자사를 지냈으나 모반에 가담하여 죽임을 당했으므로, 구양순은 아버지의 친구 강총(江總)에게 양육되었다. 용모가 보잘 것 없었으나 매우 총명하여 경사(經史)를 박통하였다. 수왕조에 태상박사(太常博士)를 거쳐 당고조 및 태종시에 태자솔경령(太子率更令)과 홍문관학사를 지냈으며, 발해남(渤海男)에 봉해졌다. 우세남(虞世南, 558-638)과 더불어 홍문관에서 귀족 자제들에게 글씨를 가르쳤는데, 저수량(596-658)과 더불어 초당(初唐) 삼대가로 일컬어진다. 저서로는 유명한 「예문유취(藝文類聚)」가 있다.

 

'維貞觀六年孟夏之月'로 시작하는 문장에서 알 수 있듯이, '구성궁예천명'은 당태종 정관 6년 즉 632년에 조성되었으며, 구양순이 76세 때 쓴 글씨이다. 구양순은 장수하여 85세를 살았는데, 희수(喜壽)를 앞에 둔 고령의 글씨임에도 불구하고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치밀한 결구를 구사하였다. 사람과 글씨가 연륜을 더해가며 더욱 노련해진다는 인서구로(人書俱老)를 여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 충신 위징이 글을 짓고 구양순이 쓴 '구성궁예천명'은, 그 시작은 미미하였으나 그 마지막은 성대하리라는 성구를 떠올리게 한다. 당태종이 측근들의 간절한 권유를 받아들여 초여름 피서를 간 곳은 수나라 때 건축된 인수궁(仁壽宮)을 개수한 구성궁이었다. 궁궐은 높은 지대에 자리하여 늘 물이 부족했는데, 당태종이 고각에 올라 아래를 내려보다 습지를 발견하고 지팡이로 건드리니 물이 샘솟고 그 맛이 달았다. 이에 상서로운 조짐으로 의미를 부여하고, 송덕비를 세워 당태종의 덕정을 선포함으로써 그의 정치적 정당성을 후세에 전하고자 하였다. 서예 감식에 뛰어났던 당태종은 명서가 구양순에게 글씨를 쓰도록 명하였다.

 

이후 구양순의 글씨는 중국은 물론 우리 문화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일례로 고려의 사신들이 중국에 올 때마다 구양순의 글씨를 요구하자, 송나라 황제가 "저들이 구양순의 글씨를 보고 그가 얼마나 못생기고 볼품 없는지 알까?"하며 비웃을 정도였다. 이처럼 그는 중국뿐만 아니라 신라 이래 고려와 조선의 서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구성궁예천명'은 구체(歐體)의 상징으로 널리 인식되었다.

 

구양순은 서성 왕희지의 글씨를 배워 마침내 굳건한 해서의 전형을 확립하였다. 「당서(唐書)」에 구양순의 서예 편력에 대한 이야기가 전한다. "구양순이 어느 날 길을 가다가 색정(索靖)이 쓴 비를 발견하고, 꼼꼼히 살펴본 뒤 떠났으나 몇 걸음 되지 않아 다시 돌아와 살펴보았고, 피곤이 몰려오자 아예 자리를 펴고 앉았다. 밤이 되자 그 곁에서 잠을 자며 살핀 지 3일만에 비로소 필법을 깨닫고 떠났다." 이어서 '그의 서에 대한 기호가 이러하였다'고 간략하게 평하였다. 우리는 이 일화를 통해서 구양순이 당대 최고의 서가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는 열정이 있었음을 엿볼 수 있다. 성공한 사람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일념(一念)이다. 지극히 절제된 운필과 조형적인 결구를 보며, 치열한 공부가 희수를 앞두고 비로소 역사적 결실을 맺은 듯하여 감개를 느낀다. 이처럼 구양순의 '구성궁예천명'은 한 개인의 치열한 공부의 산물로서 품격 높은 아름다움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당(唐)의 안정된 사회와 문화의 수준을 동시에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이은혁(한국서예문화연구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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