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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백가쟁명] 보호자 없는 병원 - 이지현

이지현(전주교통방송 작가)

며칠 전 둘째 아이의 유치원 선생님에게 전화가 왔다. 일을 하고 있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전화를 받았다. 그때 들려오는 선생님의 다급한 목소리. 둘째 아이가 열이 많이 나서 병원에 가야할 것 같다는 것이었다.

 

'혹시 신종플루?'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병원으로 향하는 중에도 머릿속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병원 응급실은 북새통이 따로 없었다. 여기저기 아이들의 울음소리에, 급하게 구급차를 타고 응급실을 찾은 일반 환자가 한데 뒤엉켜 마땅히 앉아있을 자리조차 없었다. 아이는 신종플루 검사를 했고, 의사는 일단 타미플루를 처방해줄 테니, 가서 복용하고 결과는 하루 뒤에 나온다는 말을 해주었다.

 

막상 집에 돌아오니 또다른 걱정이 생겼다. 당장 내일부터 출근을 해야 했기 때문에 딱히 아이를 맡길 데가 없었다. 다행히 아이는 신종플루가 아니었기에 별 문제 없이 다시 직장에 나갈 수 있었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하루나 일주일 정도의 병간호가 아니라 장기간 입원에 따른 간병이라면 어떻게 됐을까 하고. 그렇게 될 경우 나는 아마도 직장에 그만 두는 쪽을 택하게 될 것이다. 실제로 6개월 이상 장기 입원 환자를 돌봐야할 때, 직장이 있는 보호자가 퇴직을 한 경우가 47.8%나 된다고 한다. 이 경우 여성이 그 대상자가 될 확률은 더욱 높다.

 

이럴 경우 요즘 논란이 되고 있는 '보호자 없는 병원'이 확대된다면 좋을 듯 싶다. '보호자 없는 병원'은 보호자가 없어도 병원에서 간호와 간병을 전적으로 책임지는 곳이다. 국가에서 간병비 중 상당 부분을 지원해 환자 가족의 경제적인 부담까지 줄여준다. 한마디로 일자리 창출은 물론, 개별 간병의 부담 경감, 의료서비스 질 향상이라는 일석삼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선진국형 의료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이미 선진국에서는 많은 병원들이 보호자 없는 병원을 운영하고 있고, 우리나라도 일부에서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의 '보호자 없는 병원'의 확대 시행은 갈수록 요원해져 보인다. 얼마 전 보건복지부가 뒤늦게 '보호자 없는 병원'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내년 예산안에 34억원을 배정해줄 것을 기획재정부에 요청한 바 있다. 그러나 이 안은 기획재정부와의 협의 과정에서 전액 삭감됐다.

 

의료의 질을 높이고, 또 일자리 창출이라는 효과를 거둘 수 있음에도 예산 전액 삭감이라니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 대목이다. 그나마 일부 국회의원들이 나서서 '보호자 없는 병원' 확대 시행을 위해서 애쓰고 있다니 다행이 아닌가 싶다.

 

질병은 사람을 가려서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또한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처럼 언제 내가 환자가 될 지도 모르고 간병을 해야할 처지에 놓일지도 모를 일이다.. 그럴 때, 다니던 직장을 그만둠으로 인해 생기는 심리적·경제적인 부담을 줄일 수 있는 '보호자 없는 병원'. 대한민국이 진정한 의료 선진국이 되기 위해 꼭 필요한 시스템이라고 본다.

 

/이지현(전주교통방송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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