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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감영과 4대문복원] ⑧해외 사례-(3)일본 가나자와

가나자와성 1996년부터 2300억 투입…2016년까지 철저 고증통해 복원·정비

전통과 현대가 만나 화려한 문화의 꽃을 피우고 있는 일본 가나자와도 항상 답을 준비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답을 얻을 수 있는 실마리를 챙겨주는 것은 분명하다. 전주의 자매도시답게 비슷한 고민을 앞서 해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전라감영 복원문제를 등짐삼아 짊어지고 다시 찾은 일본의 전통문화도시 가나자와에서 우리는, 아니 적어도 나는 그 해결의 원칙과 방향은 확인할 수 있었다. 예전에 찾았을 때에는 복원된 가나자와성(金澤城)의 규모에 압도되어 후백제 전주성도 복원해야 하는 거 아닌가, 막연한 생각만 했었다. 이번에 좀 더 구체적인 물음을 가지고 찾았을 때에도 하얀 눈으로 온통 뒤덮인 놀라운 풍광에 어안이 벙벙했다. 물론 그것은 눈이 아니다. 납으로 만든 기와가 햇빛을 받아 하얗게 빛난 것이다. 그런데 4년 전과는 분명 달라 보였다. 뭔가 신비로운 느낌이 강하게 다가왔다. 몇몇 건물이 보강되고 해자(垓字)에 세월의 켜가 쌓이면서 고풍스러운 분위기까지 풍기는 것이다. 그러다가 오오바 요시미 선생(가나자와학원대학 교수·이시카와현 비주얼 디자인협회장)의 설명을 듣고서야 아!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전통은 창조다!'. 이 분의 지론이다. 그래서 복원보다는 전통문화의 창조적 계승에 더 큰 비중을 둔다. 그렇게 보였다. '직인대학'이나 '시민예술촌' 그리고 지금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는 '21세기 미술관'도 그런 생각의 연장선상의 기획물들이다. 가나자와 하면 국가문화재로 지정된 전통거리 '히가시 차야가이'나 무사 저택 등 많은 역사 유적들이 있는데도 화려한 금박공예나 고급 브랜드의 기모노 등이 먼저 떠오르는 것도 이런 철학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그분이 복원의 의미를 묻자 '백년 후의 국보를 만드는 일이다!' 하는 것이다. 그랬다. 1996년부터 복원을 시작한 가나자와성은 벌써부터 당당한 국가적 보물의 '아우라'를 내품고 있었다!

 

복원은 단순히 끊긴 역사를 잇거나 볼거리 하나 만들어 가는 일이 아니다. 이 시대의 예지를 모아 다음 세대 국보가 될 만큼 소중한 문화적 유산을 남기는 일이다. 경제살리기나 지역활성화 차원을 훨씬 뛰어넘는 심오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어야 한다. 과거 전통에 연연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세대들이 지속적으로 기대며 살아갈 수 있는, 김수영의 '거대한 뿌리'와 같은 전통 하나를 우뚝 세워가는 일이다. 고대 로마 유적이 현재 이탈리아인들을 먹여 살리듯. 그런 의미에서 '복원은 창조다!'라고까지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제멋대로 '상상의 정비'나 '상상의 복원'을 하자는 것은 아니다. 가나자와성도 철저하게 고증된 것만 복원정비하고 있다. 사실로 확인될 때까지는 절대 손을 대지 않는다. 세계문화유산을 꿈꾸고 있는 마당에 허투루 대강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만큼 큰 의미를 부여하며 정성을 다해야 한다는 의미일 뿐이다.

 

그 예산규모만 해도 그 진정성은 확인할 수 있다. 1996년부터 2005년까지 제 1차 복원에 쓰인 경비가 252억엔, 토지매입비 112억엔을 뺀 순수 복원정비경비만 140억엔, 우리 돈으로 1700억원. 이 예산의 전부를 가나자와가 속해 있는 이시카와현에서 부담했다. 2006년부터 10여년에 걸쳐 진행될 2차 복원 예산도 50억엔(600억원). 그런데 이제부터는 역사문화의 복원에 나선 국가가 예산의 절반을 보조한다는 것이다.

 

또 하나, 오오바 선생이 강조한 가나자와성 복원의 의미는 그 밀폐의 공간을 주민들에게 열어주기 위한 것이라는 점이다. 1546년 가나자와미도가 창건된 이래 이 성은 성주들만을 위한 금단의 영역이었다. 명치시대에 병부성, 육군성이 들어서면서도 역시 출입금지의 땅이기는 마찬가지였다. 그 뒤 가나자와대학이 들어서면서 일부에게 해금이 되었지만 여전히 일반인들의 발걸음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1996년 복원을 시작하는 동시에 공원으로 재정비하면서 비로소 주민들의 품에 안기게 되었다. 가나자와시민을 넘어 전 세계인들에게 개방된 것이다. 실로 450년 만의 일이다.

 

50칸 집이라는 의미의 고주켄나가야를 이용하여 각종 전시회가 열리고 있으며 성 안과 밖의 광장에서는 대형 음악회 등 시민들을 위한 문화행사들이 다채롭게 꾸려지고 있다. 복원을 통해 공원으로 거듭나면서 성 앞쪽의 일본 3대 명원(名園)의 하나인 켄로쿠엔과 더불어 시민들이 가장 즐겨 찾는 명소로 자리를 잡았다. 인구 46만의 가나자와시에는 연간 700만 명의 관광객이 찾아오는데 그들이 가장 방문하고 싶어 하는 곳으로 당당히 서게 된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유형의 건축물 복원을 통해 무형의 일본 전통목조공법을 되살릴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명치이후 목조성곽으로는 일본 최대의 규모로 알려진 고주켄나가야 등을 복원하기 위해서는 기둥과 대들보를 짜 맞춰 거대한 뼈대를 이루는, 일본 최고의 전통 대목의 기술이 필요하다. 그 내부를 잠깐만 둘러보아도 그 정교한 '짜맞춤공법'을 금방 확인할 수 있다. 말하자면 일본 전통목조공법의 산 교육장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를 위해 건물 곳곳에 벽 투시공간을 마련하여 내부구조까지 들여다 볼 수 있게 배려를 한 것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겠다.

 

수요가 사라지면 기술도 사라지게 마련. 이런 대규모 목조 건축의 복원을 통해 최고의 목조공법을 이어갈 수 있게 된 것은 그 자체로도 의미 있는 일이다. 이를 통해 '직인대학' 등의 활성화에도 큰 기여를 했을 것이니 이를 두고 일석이조라 하는 것인가?

 

복원은 단순히 과거로의 회귀가 아니다. 미래로의 당찬 전진의 발걸음이다. 왜곡의 역사를 떨치고 스러져가는 전통문화를 되살리는 일이다. '백년 후의 국보'를 만든다는 것은 단순히 유형의 건축물을 남긴다는 얘기가 아니라 그 무형의 국보급 공법, 그 미학까지 후세에게 오롯이 전하겠다는 의미인 것이다. 전라감영의 복원도 그 당당한 '아우라'까지 되살리는, 그런 진정성이 결여된 채 시늉만 내는 것이라면 아직 시작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일본 가나자와=이종민 기획 참여 전문가(전북대 교수·전라감영 전주4대문 복원 통합추진위원회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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