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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혁의 글씨로 만나는 옛 글] (19)황정견(黃庭堅)의 '송풍각시권(松風閣詩卷)'

유배지의 아름다운 풍광 그려낸 일필휘지

黃庭堅, '松風閣詩卷'(1102년) (desk@jjan.kr)

황정견(1045~1105)은 북송 사대가의 한 사람으로 자는 노직(魯直), 호는 부옹·산곡이며 홍주 분녕(洪州分寧 : 江西修水) 사람이다. 소동파의 제자인 소문사학사(蘇門四學士)의 한 사람으로서 그의 학문과 정신을 이어받아 강서시파(江西詩派)의 개창자가 되었다. 서예는 동파와 함께 안진경 이래의 혁신적인 서풍을 배웠으나 황정견은 동파보다 진일보하여 초월절진한 일기(逸氣)를 나타낸 인물로 평가된다. 그는 글씨를 공부한 지 20년이 넘도록 속기를 면하지 못하다가 소씨 형제(蘇舜元·

 

蘇舜欽)의 글씨를 보고 겨우 고인의 필의를 얻었으며, 그 후 당대의 장욱(張旭), 회소(懷素), 고한(高閑) 등의 묵적을 보고 비로소 필법의 오묘함을 깨달았다고 회고하였다.

 

일설에 황산곡은 평소 관찰력이 뛰어났는데 일찍이 사공이 노를 젓는 것을 보고 이것을 용필에 적용하여 독특한 서풍을 이루었다고 한다. 특히 행서에서 노를 젓는 저항력과 비례하여 힘차게 전진하는 배의 형상이 용필의 긴삽(緊澁)함으로 환치되어 더딘 듯하면서도 좌우로 시원하게 뻗은 필획과 곧은 수획으로 나타났다. 서예용어로는 이것을 장별·장날(長捺)·현침(懸針)이라 하는데 그 형상이 마치 노를 저으며 나아가는 배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이른바 역수행주(逆水行舟)의 모습이다. 이러한 독특한 필의는 그의 행서작 '화기시(花氣詩)' '송풍각시권' '황주한식시권발(黃州寒食詩卷跋' '범방전(范旁傳)' 등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공부면에서 소동파가 신의(新意)를 강조하며 고인에게서 일탈할 것을 강조한 것과는 달리 황산곡은 고인의 필법을 체득하여 자신만의 독자성을 확보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소·황 모두 운(韻)을 중시하고 탈속을 강조한 점에서는 동일하였다. 이러한 사고는 자외(字外) 공부로 이어져 학문수양으로 발전하였으며, 학문수양 없이 단지 그 점획만을 얻은 글씨를 경계하였다.

 

'송풍각시권'은 유배에 처한 황산곡이 숭녕(崇寧) 원년(1102) 호북성 악성현 번산(樊山)의 아름다운 산수를 보고 소나무 숲 속에 있는 누각을 송풍각(松風閣)이라 명명한 뒤 직접 지어 쓴 자작시이다. 58세 때의 작품으로 그의 말기작에 해당한다. 모두 21구의 칠언고시로서 유배지의 아름다운 풍광을 소개하며 유배의 속박에서 벗어나 벗들과 마음대로 종유하고픈 간절한 마음이 담겨 있다. 무창(武昌)의 아름다운 풍광을 읊던 황산곡은 문득 스승 소동파가 황주로 귀양을 갔다가 사면되어 돌아오는 길에 상주(常州)에서 객사했던 일을 떠올린다. 동파 역시 황주의 귀양시절에 이 곳 무창에 자주 들렀기 때문이다. 장뢰는 밥을 먹다가 소동파가 죽었다는 소리를 듣고 새끼를 꼬아 머리에 두른 채 곡을 했다고 한다. 그런 친구가 죽기 전에 찾아왔으면 하는 바람과 함께 미약한 인간으로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엄습한다. 그러나 아무리 탄식한들 세상이 갑자기 변할 리 없으니 처해진 환경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것도 하나의 방편일 것이다. 넘실거리는 파도소리를 베개삼아 낮잠을 즐기고, 눈을 뜨자 이양빙이 전서로 쓴 누정의 편액이 교룡처럼 얽혀 있는 것이 들어온다. 마지막 구절에서 "어느 때나 속박에서 벗어나 친구들과 자유롭게 뱃놀이를 하며 두루 돌아볼까"라고 한 것을 보면, 결코 삶에 대한 애착을 버리지 않고 여전히 자유세계를 꿈꾸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산곡의 간절한 마음과 그가 체득한 필묘(筆妙)를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수작이다.

 

/이은혁(한국서예문화연구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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