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정 교수 "완판본 조사중 문고판 10권 발견" …이태영 교수 "문고판은 대중화된 책"
「주역(周易)」 태인본으로 추정되는 문서가 김해정 우석대 명예교수에 의해 발견됐다. 태인본은 민간에서 판매용으로 인쇄한 책인 방각본(坊刻本) 중 전국적으로 가장 먼저 태인에서 만들어진 문서.
김 교수는 완판본에 관한 책을 조사하던 중 '주역'이라는 제목을 가진 문고판 10책이 발견됐다며 주역 본문만 있고, 서문, 발문, 판권지가 없는 상태라 지배문서(책의 앞·뒤 표지 속에 들어있는 재활용한 폐지)로 확인한 상태라고 말했다. 책이 오래 되어서 판권지나 출판일자를 가늠할 수 없을 때엔 그 표지 속에 숨어있는 지배문서를 찾아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무슨 책의 폐지였는가를 조사해 그 원문의 출처를 밝혔던 것.
김 교수는 주역에 1794년 태인 현감으로 부임했던 조항진씨의 호가 기록에 남아있는 점을 볼 때 이는 태인본이며, 그의 활동 연대를 봐도 병진년이 1796년임을 알 수 있게 한다고 설명했다. 「주역」 태인본으로 추정되는 이 문고판은 본래 한 질(12책 24권). 그러나 3~4책은 찾지 못했다. 책의 크기는 목판본으로 14.5cm x 20cm으로 1책 분량은 116쪽이다. 한자로 된 원문은 큰 글자는 한 줄, 그에 대한 주(註)는 두 줄로 쓰여져 있다.
김 교수는"이로써 태인에서 칠서(七書)가 간행됐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 것 같아 흐뭇하다"며 "칠서의 나머지인 「대학(大學)」, 「중용(中庸)」, 「논어(論語)」, 「맹자(孟子)」, 「시전(詩傳)」, 「서전(書傳)」 등도 찾아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를 「주역(周易)」 태인본으로 단언하기 어렵다는 주장도 있다. 이태영 전북대 교수는 "이를 「주역」 태인본이라고 보기는 힘들다"며 "1700년대 후반 판매용으로 대중화된 문고판이 나왔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이어 언제, 어디에서 찍었다는 기록이 없는 데다 나머지 칠서도 발견된 바가 없고, 주역이 200여 년이 흘렀다는 점을 감안할 때 문서 상태가 양호한 것으로 보아 「주역」 태인본이라고 확정하기엔 아직 이르다고 말했다.
이 문고판이 실제 「주역」 태인본인지 아닌지의 여부는 앞으로 학계를 통해 충분히 검토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