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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혁의 글씨로 만나는 옛 글] (22)조맹부의 난정십삼발(蘭亭十三跋)

왕희지의 고법 추구한 서체…피력 굳세고, 신채를 발하다

조맹부 蘭亭十三跋 (desk@jjan.kr)

흔히 중국정치를 일치일란의 순환론적 역사로 귀결하는데, 서예도 이와 비슷하여 전통과 혁신이 시대의 흐름을 타고 순환하였다. 왕희지에 의해 완성된 서예의 전형이 이후 남북으로 분화되며 새로운 서예미를 추구하다가 초당의 삼대가에 의해 새로운 전형주의가 확립되었다. 구양순을 비롯한 초당의 서가들이 추구한 전형주의는 당 중기 안진경의 출현으로 혁신적인 서풍으로 선회하였고, 이는 북송 사대가에게 계승되었다. 북송 사대가는 신의(新意)의 창출을 기치로 내걸고 각기 개성적인 필치를 보이며 서예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 원대에 들어서면서 송왕조 출신의 조맹부가 출현하여 복고주의를 주장함으로써 다시 왕희지의 전형이 부활되었다. 이러한 순환론적 역사는 시대를 인식하는 선각자들의 우환의식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주자(朱子)가 대학장구서(大學章句序)에서 천운의 순환을 운운한 것과 청말민국초의 대학자 양계초(梁啓超)가 청대의 학술을 생주이멸(生住異滅)의 불교사상에 빗대어 순환론 즉 사조(思潮)를 설명한 것이 그 좋은 예이다.

 

조맹부(1254~1322)는 자가 자앙(子昻)이며, 호는 송설(松雪)이다. 송태조의 아들 진왕 조덕방(秦王趙德芳)의 후예였는데, 송이 멸망한 후 정거부(程距夫)의 추천으로 원왕조에 출사하여 위국공(魏國公)에 봉해지고 한림원학사 승지(承旨)에까지 영달하였으나 출처진퇴에 대해서는 눈총과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서화에 대한 천부적인 소양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며, 그가 표방한 복고주의는 중국 서예사를 돌려놓을 만큼 획기적인 것이었다. 그의 복고주의는 송의 귀족문화와 부합하여 큰 동력을 얻어 몽고족이 지배한 원왕조에서 꽃을 피웠다. 그의 서는 삼변(三變)으로 논해지는데 왕희지의 서풍을 추구한 송 고종의 서를 배운 것, 1310년 독고장노(獨孤長老)로부터 정무난정(定武蘭亭)을 얻고 왕희지의 고법을 추구한 것, 그리고 말년에 당의 서가 이옹과 유공권의 필법을 가미한 것이 그것이다. 필력이 굳세고 신채를 발하였다는 호평이 있는가 하면, 용숙(庸熟)하고 평판(平板) 같다는 혹평도 있다. 서평을 토대로 그의 글씨를 검토해보면 전형주의에 의거하여 그 형태적인 면에서 완정함을 보이지만 변화가 부족한 점을 지적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실제로 북송사대가의 신선함과 호탕함에 견주어 본다면 다소 지루한 감이 없지 않으나, 그의 전형적인 서는 시대적 미감을 전형으로 다시 돌려놓으려는 의식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전형의 부흥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가치가 있다.

 

조맹부의 난정십삼발(蘭亭十三跋)은 그가 얻은 정무난정본에 대한 발문으로 복고주의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여기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피력한다. "학서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필법이고 둘째는 자형이다. 필법이 정밀하지 못하면 비록 잘 썼다할지라도 눈에 거슬리며, 자형이 묘하지 않으면 비록 익숙하게 썼다할지라도 생경하다. 학서에서 이것을 이해해야만 비로소 서를 말할 수 있다." "서법은 용필(用筆)을 최상으로 삼으며 결자(結字) 역시 치밀해야 한다. 결자는 시대마다 다르지만 용필은 천고에 바뀌지 않는다."

 

훗날 명대의 동기창(董其昌)은 자신이 비교우위에 있다고 자부하였지만 조맹부의 소해(小楷)는 결코 넘볼 수 없는 재능이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고려 말 충선왕의 만권당(萬卷堂) 교유에 조맹부가 관련되어 있으며, 송설체의 수용은 조선조 서예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은혁(한국서예문화연구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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