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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혁의 글씨로 만나는 옛 글] (23)문징명(文徵明)의 행서시권(行書詩卷)

굳건한 필력 구사한 징명의 만년 수작…송대 이래 황산곡의 영향 엿볼 수 있어

文徵明, 行書詩卷 (1557년) (desk@jjan.kr)

문징명(文徵明, 1470~1559)은 명대의 서화가로서 초명이 벽(壁) 또는 벽(璧)이었으며, 자는 징명(徵明)이었으나 후에 징중(徵仲)으로 고쳤다. 호는 형산(衡山)이며, 장주(長洲 : 蘇州) 사람이다. 온주지부(溫州知府) 아버지 문림(文林)의 주선에 의하여 시문을 오관(吳寬), 그림을 심주(沈周), 글씨를 이응정(李應禎)에게 배웠다. 이 세 사람은 모두 아버지의 친구로서 당시 뛰어난 명사였다. 이후 징명은 절차탁마하여 축윤명(祝允明), 당인(唐寅), 서정경(徐楨卿)과 더불어 오중사재자(吳中四才子)로 일컬어졌다. 처음에는 관로에 뜻을 두고 26세 때 과거에 응시하였으나 낙방하였고, 이후 아홉 번이나 낙제함으로써 뜻을 펼치지 못하였다. 한때 시서화에 뛰어나 한림대조(翰林待詔)라는 직책을 받았으나 적응하지 못하고 3년 만에 사직, 귀향하여 90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재야의 인물로 활동하며 소주예원을 주도하였다.

 

징명의 중자(中子)인 문가(文嘉)의 「선군행략(先君行略)」에 의하면, "아버지는 젊었을 때 글씨를 잘 못썼다. 그러나 힘써 배우며 송 원시대의 글씨를 모범으로 삼아 절차탁마하여 필의를 깨달았고, 이후에는 진·당의 글씨를 모범으로 삼았다. 소해는 왕희지의 황정경(黃庭經)과 악의론(樂毅論)을 따랐으며, 예서는 종요(鍾繇)를 모법으로 삼아 일세에 독보적이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만년에 이르러 승두체에 뛰어났으며, 심주(沈周)를 모방하여 황정견 풍의 대서를 잘 썼다. 시문집으로 「보전집(甫田集)」이 있으며, 「정운관첩(停雲館帖)」에 그의 글씨가 새겨져 있다. 그의 장자 문팽(文彭)은 가학을 이어받아 각 서체에 두루 능하여 아버지와 비교될 정도였으며, 특히 전각의 비조로 이름이 높다. 북송대 소순, 소식, 소철의 소씨(蘇氏) 삼부자가 출현하여 문단을 풍미한 것처럼 명대의 문징명, 문팽, 문가의 문씨(文氏) 삼부자가 출현하여 서화각으로 일세를 풍미한 것이 참으로 흥미롭다.

 

문징명의 작품 중에서 76세 때 행초서로 쓴 「천자문」이 일품이다. 「명산장(名山藏)」 권95에 의하면, 그가 소주부학(蘇州府學)의 학생신분이었을 때 매일 천자문을 열 번씩 임사하며 글씨를 연마하였고, 이후에도 각 서체로 천자문을 계속 쓰며 서법을 수련하였다고 한다. 집자성교서와 지영의 천자문의 필법이 강하게 드러나 있는 유려한 행초서로 좋은 서학자료이다.

 

여기에 소개하는 행서시권은 권미의 관기에 '丁巳春三月卄日徵明書'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가정(嘉靖) 36년(1557) 징명의 나이 88세 때의 작품임을 알 수 있다. 미수(米壽)의 글씨라지만 그 기개와 골기가 결코 쇠하지 않고 여전히 굳건한 필력을 구사하고 있는 징명의 만년 수작이다. 필의는 황정견과 심주의 서풍을 따르고 있지만 황풍이 강하며, 뛰어난 필력과 결구을 구사하고 있어 송대 이래 황산곡의 영향을 엿볼 수 있는 좋은 작품이다. 그 내용은 이전에 호구(虎丘)에서 아름다운 경치를 완상하며 읊었던 칠언율시 4수이다. 그 필치와 내용이 흡사 황정견의 송풍각 시권을 보는 듯하며, 같은 글자도 빈출하여 좋은 대비를 이룬다. 송풍각 시권과 이 행서 시권을 번갈아 임서해보면 그 취의처를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이은혁(한국서예문화연구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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