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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혁의 글씨로 만나는 옛 글] (24)동기창(董其昌)의 빈풍도시권(빈風圖詩卷)

믿기 어려운 유려한 행초서…조정에 출사한 동기창이 그 느낌을 詩語로 표현

董其昌 빈풍도시권(부분) 1621년 (desk@jjan.kr)

명대의 서화가 동기창(1555~1636)은 자가 현재(玄宰)이며 호는 사백(思白)·향광거사(香光居士) 등이 있다. 화정(華亭 : 지금의 上海松江) 사람으로 만력 17년(1589)에 진사로 급제하여 남경(南京) 예부상서를 지냈으나 위충현(魏忠賢)의 화에 휘말릴 것을 염려하여 사직하였다. 시서화에 뛰어났으며, 특히 실기를 겸비한 서화가로서 이론와 감상에도 이름이 높아 후세에 끼친 영향이 지대하다. 이로 인하여 훗날 '藝林百世之師'라고 불렸지만, 동기창은 평소 얽매임이 없이 서화를 탐닉하며 정무를 게을리하다가 탄핵을 당하기도 하고, 고향에서는 고리대금으로 폭리를 취하여 서화수집에 힘쓰다 저택이 습격을 당하는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완물상지의 전형적인 예이다.

 

자신이 술회한 학서이력을 보면, 17세 때 안진경의 「다보탑비」에서 출발하여 우세남을 배우고, 종요와 왕희지로 거슬러 올라가 공부하는 소원(溯源)의 방법을 취하였다. 그러나 감상가로 널리 알려진 항원변의 집에서 역대 진적을 목도하고 금릉(金陵)에서 왕희지의 진적 관노첩(官奴帖)을 본 뒤 진적이 아니면 신수를 깨달을 수 없음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림은 동원(董源)으로부터 출발하여 송원 제가들의 장점을 두루 배워 일가를 이루었다. 화론 연구는 남파와 북파의 이론적 체계를 세운 것으로 유명하며 흔히 일컫는 남종화와 북종화라는 용어 역시 그의 화론 체계에 의한 것이다. 이는 훗날 추사 김정희의 스승 완원(阮元)이 제기한 남북서파론에도 영향을 주었다.

 

동기창은 왕희지의 글씨를 종주로 삼았으나 단지 형사를 취하지 않고 신수를 파악하는 것에 주안점을 두었다. 이러한 점은 전대의 조맹부와 그 계통들이 왕서의 형사를 추구한 것과 대조적이며, 스스로를 조맹부와 견주어 말하곤 하였다. 그는 창신을 추구하며 중시했던 솔의(率意)와 평담천진을 강조했던 송대 미불의 영향을 받았으며, 한편으로는 선종에 조예가 깊어 선리(禪理)에 의한 깨달음도 있었다. 그의 서화와 이론이 후세에 높이 평가되는 것도 이러한 깊이 때문일 것이다. 훗날 청나라 강희제가 그의 글씨를 혹애하자 당시 신하들이 모두 동기창의 글씨를 모방했다고 한다. 서화수필집으로 유명한 「화선실수필(畵禪室隨筆)」이 있으며 저서로 「용대집(容臺集)」이 전한다. 「화선실수필」을 통해서 간단히 그의 서예관을 살펴보면, 왕희지의 자세(字勢)는 사기반정(似奇反正) 즉 기이한 듯하지만 오히려 바르다고 평한 것, 그리고 서도(書道)는 다만 교묘(巧妙) 두 글자에 있다고 한 것 등을 들 수 있다.

 

여기에 소개하는 '빈풍도시권'은 그 끝에 '天啓元年秋九月董其昌書'라는 관기가 있으므로 1621년 동기창의 나이 67세 때에 쓰여진 작품임을 알 수 있다. 동기창은 이때 다시 조정에 출사하여 궁중에 소장되어 있던 조맹부의 빈풍도를 직접 보았는데 그 느낌을 시로 지어 쓴 것이다. 구름문양이 있는 종이에 다른 행초시권보다 비교적 큰 글씨로 쓰여졌으며 유려한 행초서의 면모를 유감 없이 보여주고 있다. 모두 26구의 칠언고시로 횡서하였고 章皇, 宸章, 聖道 등의 단어가 나올 때는 행을 바꾸어 신하로서 임금에 대한 경의를 표하였다. 「시경」의 빈풍은 일반 백성들의 농사짓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는데, 빈풍도는 이를 소재로 그린 그림이다. 동기창의 시권에 詩中盡繪農桑事, 田家作苦非一狀 등의 구절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자신을 누차 조맹부와 비교한 동기창은 아마 조맹부의 빈풍도를 보고 그 감회가 남달랐을 것이다.

 

/이은혁(한국서예문화연구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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