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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혁의 글씨로 만나는 옛 글] (28)하소기(何紹基)의 임장천비(臨張遷碑)

사법(射法) 응용 자성일가한 개성 돋보여

하소기 임장천비(1862년) (desk@jjan.kr)

하소기(1799-1873)의 자는 자정(子貞), 호는 동주(東洲) 원수이며, 호남성 도주(道州) 사람이다. 집 앞에 동주산이 있어 이를 취하여 호로 삼았고, 한나라의 명궁 이광(李廣) 장군이 원숭이처럼 팔이 길었다는 고사를 취하여 활을 당기듯 팔뚝을 들고 써야 한다는 현비직필(懸臂直筆)의 집필법을 주장하며 스스로를 원비옹(猿臂翁) 또는 축약하여 원수라고 지칭하였다. 호부상서 하릉한(何凌漢)의 장자로 소업(昭業)과는 쌍둥이였다. 평생 대련작품을 많이 남겨 서련성수(書聯聖手)라는 칭찬을 받았다.

 

20대 후반기에 포세신(包世臣) 장백생(蔣伯生) 등과 교유하며 금석연구에 열중, 마침내 장흑녀묘지(張黑女墓誌) 구탁본과 설직(薛稷)의 신행선사비(信行禪師碑) 송탁본을 수중에 넣었다. 37세에 호남의 향시의 합격하고 익년에 북경의 회시에 급제하여 한림원 서길사(庶吉士)에 편입되어 3년 간 연수하였는데 그 때 완원(阮元)의 교습을 받았다. 향시의 시험관이었던 오영광(吳榮光)과 완원은 모두 비학자들로서 하소기의 서학에 큰 영향을 미쳤다. 하소기는 두 선사를 통하여 금석학의 세례를 받고 비탁본을 널리 수집하는 한편, 이를 토대로 「동주초당금석발(東洲草堂金石跋)」을 저술하기도 하였다. 수장했던 명품으로는 한의 장천비(張遷碑), 북위의 장흑녀묘지, 당 설직의 신행선사비, 이옹의 법화사비(法華寺碑), 안진경의 이원정비(李元靖碑)를 비롯하여 삼고와 마고선단기, 송 소식의 금강경 등이었다. 하소기는 천하의 보배였던 장흑녀묘지 탁본의 발문에서 "매번 임서할 때마다 반드시 회완(回腕)으로 팔뚝을 높이 쳐들고 몸의 힘이 붓에 통하도록 글씨를 썼는데 반도 못 가서 옷이 땀으로 흥건했다."고 회고하며 현완법을 강조하였다. 자신의 서력에 관해서는 법화사비 발문에서 밝힌 것처럼, 40년 가까이 안진경과 이옹의 서법에 경도되었다가 중년 이후에는 북비로 눈을 돌리고, 만년에는 한비로 거슬러 올라갔다고 밝혔다. 이는 당시 유행한 비학의 영향이다. 기본적으로 완원의 남북서파론과 북비남첩론을 계승하며 북파의 연원을 좇아 서법을 탐구하였다. 이로 인하여 하소기의 서는 안진경의 쟁좌위고와 장천비 및 석문송의 필의가 강하게 풍긴다.

 

여기에 소개하는 「임장천비」는 말 그대로 한나라의 팔분 중에서 양강지미(陽剛之美)의 대표작으로 불리는 장천비 탁본을 입수하여 임서한 것이다. 청대 후반기로 갈수록 금석학과 비학의 흥행과 맞물려 고비에서 서의 법을 찾으려는 경향이 농후해졌는데 하소기도 이에 다름 아니었다. 하소기는 임서의 말미에 같은 글씨체로 "壬戌七月十九六十通竟"이라 기년을 밝히고, 그 밑에 소자로 4행에 걸쳐 "平齋仁弟苦索拙書適臨此本竟則以寄之發三千里外一笑歎也何紹基記於長沙化龍池寓"라고 낙관하였다. 임술년은 동치(同治) 원년 즉 1862년에 해당하며 하소기의 나이 64세 때이다. '六十通竟'은 60번째 전임하였다는 말로 이해되며, 한편 그가 고법의 탐구에 얼마나 치력하였는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장천비만 모두 100통을 임서했다고 한다. 당시 하소기는 서예적 명성이 있어 그의 글씨를 구하는 자들이 많았는데 낙관에 보이는 평재 역시 그랬던 모양이다. 장천비를 임서한 후 자신의 글씨를 애타게 찾는 삼천리 밖의 평재에게 보낸 뒤 기분 좋게 너털웃음을 짓는 하소기의 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호남성 장사(長沙)의 화룡지(化龍池)는 하소기가 관직에서 물러나 함풍(咸豊) 11년(1861)부터 거처하던 성남서원(城南書院)이 있는 곳이다. 청대 비학의 학풍을 계승하여 동경의 석묵이 모두 나의 스승(東京石墨皆吾師)이라고 외쳤던 하소기는 분명 자립문호(自立門戶)와 자성일가(自成一家)의 꿈을 이룬 걸출한 서가였다.

 

/이은혁(한국서예문화연구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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