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인문학상, 이효석문학상, 동서문학상, 한국일보문학상, 현대문학상을 수상한 우리 시대 대표 이야기꾼 성석제가 처음으로 전래동화를 썼다.
우리 전통 구전 이야기인 '토끼전'을 바탕으로 한 판소리 수궁가를 재창작한 '토끼와 자라'(비룡소)로, 그림책으로 꾸며졌다.
성석제 특유의 해학적인 표현은 여전하지만 어린이들의 눈높이에 맞게 가볍고 부드러운 어법으로 풀어냈다.
바다 용왕의 병을 낫게 하고자 토끼의 간을 구해오라는 명을 받은 자라가 육지에서 토끼를 꾀어 데려오지만 토끼는 기지를 발휘해 위기를 탈출한다는 기본 줄거리는 변함없다. 하지만, 성석제만의 익살스러운 표현이 곳곳에서 번득인다.
용왕의 부름을 받고 거북, 도미, 민어, 오징어, 도루묵, 조개 등 수많은 바다 생물이 몰려와 절을 하자 용왕이 "내가 용왕이 아니라 생선 가게 주인 같구나"라고 한다거나, 용왕의 명을 받은 자라가 집을 떠나기 전 아내에게 "나 없는 사이 남생이 녀석이 옆에 안 오게 조심해!"라고 이르는 장면은 웃음을 자아낸다.
토끼와 자라가 처음 만나는 장면도 재미있다.
"요리로 깡충 저리로 깡충 갸우뚱거리고 까불며 내려오다가 자라하고 부딪쳐 버렸네. '아이고 코야! 아이고 이마빡이야! 초면에 남의 이마빡은 왜 이렇게 받아요? 자! 우리 서로 자기소개나 합시다.'"
이야기의 결말도 이채롭다.
용왕 앞에서 간을 육지에 놓고 왔다는 거짓말로 탈출해 육지로 올라온 이후에도 토끼는 여러 차례 생명의 위협에 시달린다.
"토끼는 살아났다고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오두방정을 떨다가 그만 그물에 걸렸대. 아이들이 잡으러 오자 썩은 냄새 나는 방귀를 풍풍 뀌어서 빠져나왔지."
이런 후일담을 덧붙이고도 작가는 토끼의 운명에 여운을 남기며 이야기를 끝맺는다.
성석제는 원전이 판소리 대본이기 때문에 듣는 사람과 공연하는 사람이 서로 호응하면서 말과 이야기의 풍성한 잔치를 만들어가는 것을 많이 보여주려고 했다고 출판사 측은 전했다.
'동강동강' '할짝할짝' '앙금앙금' '송알송알' 등 생동감 넘치는 우리말이 읽는 맛을 더한다.
섬세한 판화와 다채로운 색의 콜라주, 일러스트 기법을 혼합해 동물들을 단순하면서도 섬세하게 묘사한 그림(작가 윤미숙)도 인상적이다.
44쪽. 1만2천원. 6세 이상 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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