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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⑩기도, 가족을 향하다

고은숙 사회복지사 (사회복귀시설 진안 '소망의집')

 

"선생님, 딸 얼굴을 떠올리려고 해도 생각이 나지 않아요."

 

1년 전쯤 우리 시설에서 생활하다 퇴소한 이의 하소연이다. 그녀는 조울증 때문에 이혼했는데 그 뒤 딸은 시댁에서 키우는 모양이었다. 퇴소하기 전에도 그녀는 딸이 보고 싶다는 말을 수시로 했다. 하지만 그녀의 맘과는 달리 그녀의 딸은 엄마가 불편했던지 '돈 주고 갔으면 됐지 전화는 왜 하는 건데?'라며 퉁명스럽게 대하곤 했나보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내게 와서 넋두리를 늘어놓곤 했다.

 

"서운하다가도 한편으로는 이해도 돼요. 내가 걔를 직접 기르지 않아서 엄마 정을 모르니까 그럴 수도 있고, 또 이런 내가 창피하니까 그럴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어서요. 딸한테 정말 미안해요. 딸 하나도 못 키우는 내가 싫기도 하고요."

 

가족들에게 외면당하고 사는 이는 비단 이 회원뿐만이 아니다. 많은 정신장애인이 가족들과 단절돼 살아가고 있다. 정신장애를 앓고 있는 회원들일수록 가족의 지지가 필요한데도 말이다.

 

얼마 전, 음악치료 프로그램을 할 때였다. 리듬 악기를 연주하며 '무인도에 내가 혼자 있다면?'이란 노래를 부른 뒤 회원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말하게 했다. 그랬더니 대부분의 회원이 가족과 관련된 얘기를 했다. 무인도에서 엄마랑 같이 잠을 자고 싶다는 회원도 있었고, 가족들을 초대해 삼겹살 파티를 하고 싶다는 이도 있었다. 10년째 아들 둘을 만나지 못하고 있는 회원은 몸이 빨리 좋아져서 아이들을 만날 수 있게 해 달라고 열심히 기도할 거라고 했다. 그러던 중 회원 한 명이 정색을 하며 말했다.

 

"저는 혼자 있기 싫어요. 왜 혼자 그런 섬에 있어요? 애들 아빠랑 있어야죠."

 

그녀가 남편과 헤어져 지낸 지 벌써 20여년, 그동안 남편은 한 번도 면회를 오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녀는 옛집에서 남편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거라 철석같이 믿고 있다. 얼마나 가족과 함께 지내고 싶으면 그럴까 싶어 짠한 마음이 들었다.

 

처음엔 나도 정신장애인들을 살짝 경계했다. 하지만 함께 지내다보니 장애를 가지고 있는 게 약간 불편할 뿐, 일상생활을 영위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란 걸 알게 됐다. 물론 이들을 시설로 보낼 수밖에 없었던 가족들도 마음이 편치 않았을 것이다. 더욱이 정신장애인들 중에는 자신이 가족들에게 부담스런 존재라는 사실을 모르는 이들이 많다는 점도 또한 힘든 일이다.

 

정신장애인에 대한 소득보장, 의료보장, 주거서비스, 직업재활 등 사회적 지원은 무척 중요하다. 하지만 가족 간의 유대감과 지지가 먼저 뒷받침된다면 심리적·육체적인 건강이 하루라도 빨리 회복 될 수 있을 것이다.

 

음악치료를 마치면서 이 분들이 바라는 소원을 위해 함께 기도했다. 딸과 사이좋게 산책하고, 공부하는 아들에게 간식을 챙겨주고, 부부가 툇마루에 앉아 간식을 서로 나눠먹고픈 그들의 소박한 꿈이 꼭 이루어질 수 있도록 말이다.

 

※ 이 캠페인은 전라북도·전북일보·국가인권위원회 광주인권사무소가 공동으로 진행합니다.

 

/ 고은숙 사회복지사 (사회복귀시설 진안 '소망의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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